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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Aug 30. 2023

[후쿠시마 출장기①] 걱정과 준비물의 상관관계

방류 이틀 전부터 시작한 출장 준비


■ 방류 D-2


    "내가 왜 전화했는지 알겠지?"


 전날 당직을 서면서 NHK 속보를 접했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이르면 24일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속보 처리를 하면서도 나의 운명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해외 출장 기회가 잘 없었기에 당연히 외신 그림을 받아 기사를 쓰려니 했다.


 당장 내일 새벽 출국이라 할 것들이 많았다. 일단 선약과 모레 예정된 건강검진을 미뤘다. 코감기를 해결하기 위해 급하게 이비인후과에 들른 뒤 회사에 도착했다. 비행기 예약과 현지 코디 섭외가 급선무였다. 하네다 행은 이미 매진이라 나리타 행을 타야 했다. 후배 기자가 함께 일했던 코디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전화부터 걸었는데, 다행히 시간이 되신단다. 일단 붙잡아두고 회사와 비용과 일정 등을 상의한 뒤 섭외를 마쳤다. 그때, 같이 출장가게 된 후배 촬영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전화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방사능 걱정이었다. 전혀 걱정하지 않는 나와 달리, 후배 기자는 방사성 물질이 걱정돼 납조끼에 방호복 등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난 사실 내심 가보고 싶었다. 후쿠시마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쓰나미로 인한 원전 사고까지 겹친 아픈 도시였다. 그리고 이젠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또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1000여 개 대형탱크에 134만 톤 저장돼 있는 상태였다. 제1원전이 폭발하면서 냉각장치가 고장버렸고,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도쿄전력은 냉각수를 투입해 왔다. 그렇게 해서 매일 원전 오염수가 생성되고 있었는데 올해 그 저장공간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정화장치로 충분히 방사성 물질을 걸러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오염수가 아닌, 처리수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원전 앞까지 가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기에, 원전과 가장 가까운 우케도 항구 근처로 숙소를 잡았다. 당직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급하게 짐을 싸본다. 캐리어에 재킷 몇 벌, 캐주얼한 셔츠 몇 벌 등 급하게 구겨 넣고 잠을 청했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새벽까지 공항에 가야 한단 압박감이 컸다.


■ 방류 D-1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3시에 눈을 떴고 남편이 새벽에 공항에 바래다주었다. 공항에서 급하게 로밍을 하고 환전은 미리 못한 탓에 현지 ATM에서 뽑기로 한다. 사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이 급했던 건 취재, 취재, 취재. 타사는 일본 특파원이 있었을뿐더러 일찍이 후쿠시마로 가 취재를 해 오고 있었다. 다방면을 넓고 얕게 다루는 평범한 국제부 기자는 이제 일본을 급하게 아주 깊숙이 파고들어야만 했다.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기에 공항에서 어떤 포인트를 취재해야 할지 이리저리 서칭을 하고 머리를 굴렸다.


 못 잤던 잠을 2시간 30분 비행 동안이라도 겨우 청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현지 코디 선생님을 만났고, 도쿄에서 백팩을 수령한 뒤 바로 쉼 없이 차로 3~4시간 거리인 후쿠시마로 향했다. 점점 시골 느낌이 물씬 나는데 ATM을 발견하지 못해 초조해졌다. 이럴 거면 도쿄에서 급하더라도 돈을 뽑을걸. 후회해도 이미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재난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앞서는 후쿠시마의 하늘은 더없이 청명했고 마을은 평온했다. 원전 1.5km 앞까지 근접하니 방사능 수치를 알리는 전광판이 곳곳에 있었고, 요원들은 길목에서 더 접근하려는 우리를 막아섰다. 코디 선생님이 몇백 미터 전보다 전광판 수치가 더 높게 찍혀 있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원전으로 인접할 수록 방사능량을 알리는 전광판이 곳곳에 있었다.


 그렇게 해서 오후 4시 반쯤 원전에서 6~7km 떨어진 우케도 항구에 도착했다. 타 방송사 몇 군데도 이미 도착해 있었다. 바다 뒤로 솟은 기둥들이 원전이었다. 중계까지는 서너 시간 남짓 남은 시간, 항구에 주민들이 좀 나와 있다. 제대로 된 방송 인터뷰까진 무리더라도 방류에 대한 의견을 살짝 물어보기로 했다. 한 어민은 취재를 거부하면서도 반대하는 기색을 내비쳤고, 또 다른 주민은 말을 붙이니 못 이기는 척 이것저것 말을 늘어놓으신다. "주민인데도 앞으로 이곳에서 나는 수산물을 이젠 좀 먹기 꺼려질 것 같다"라고.


 오면서 차에서 코디선생님이 하셨던 말도 비슷했다. "일본 사람들은 같은 값이면, 당연히 후쿠시마산을 피한다"였다. 돈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돈 좀 주고서라도 다른 산지 식품을 구매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좀 더 싼 후쿠시마산을 구매한다고 한다. 12년 전 이미 상처를 입은 주민들은 이번 방류로 또 어떤 후폭풍이 다가올지 긴장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국에서 어렴풋이 미뤄 생각했던 것보다 이곳 주민들은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취재한 내용을 넣으며 중계 원고를 다듬은 뒤 이제 대기하려는데 문제는 복장이었다. 후쿠시마 날씨가 매우 더울 것을 알고 있었고 지진 상황도 아니었기에 사복으로 중계를 하려 했었다. 방류는 재난이 아니라는 생각에 회사 점퍼는 회사에 일부러 고이 두고 왔는데, 안에서 점퍼를 준비해 갔냐고 물어 온다. (망했다.) 급하게 후배 촬영 기자를 소환했는데, 점퍼는 없는데 방호복은 있다고 한다.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해 온 후배였다. 방호복을 급하게 챙겨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원전에서 6.6km 떨어진 우케도 항구. 원전과 가장 가까이 근접할 수 있는 바다였다.

 

 9시 무렵이 되니 주변이 새까매졌다. 가로등이 있긴 했지만 턱 없이 부족했고, 촬영 기자가 가져온 라이트와 코디선생님의 자동차 불빛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잠을 거의 못 잔 상태였던 데다 빛에 반사돼 내 휴대전화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중계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매끄럽진 않았지만 무사히 중계를 마쳤고, 편의점에서 요기할 것을 사들고 10분 거리의 비즈니스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드넓은 부지에 호텔은 이것 딱 하나. 원전 인근 출장으로 온 방문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숙소인 듯했다. 내일 아침 일찍 중계가 있기에 일단 씻고 누웠지만 꿉꿉한 잠자리에서 또 잠을 설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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