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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r 05. 2020

앵커를 그만두었습니다


 "왜 그만두었니?"


 2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받는 이 질문. 그때마다 나는 똑같이 대답한다.


"글쎄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2018년 8월 마지막 날 나는 2년 가까이 진행했던 아침 뉴스에서 하차했다. 사고를 치거나 실수를 한 건 아니다. 사유는 내가 원해서였다. 나는 입사한 지 1년도 안 돼 스튜디오에 올랐다. 현장 공기보다 스튜디오 공기를 더 많이 마시게 된 것이다. 멋들어지게 받는 헤어와 메이크업 분장, 세련된 정장, 긴장한 채로 올라서는 스튜디오 단상. "오늘 아침 ooo, 시작합니다." 멘트를 하는 하루하루가 설렜고 종편 최연소 앵커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기자'로 입사했는데 본업이 밀려 있다는 불편한 감정이 계속됐다.


 남들이라면 행복하게 누릴 일인데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막내 짬인 나는 화면으로 만나는 현장이 불편했다. 몸을 부딪혀 가면서 취재한 선배들에게 죄송스러웠다.  나도 저기에서 취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가장 민첩하게 배울 시기에 편하게 앉아만 있는 것이 마음의 짐이었다. 


 아나운서로 입사했다면 마음이 편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어쨌든 기자였다. 취재가 본업인 기자. 이 이름에 부끄럽지 않고 싶었다. (참고로, 앵커는 아나운서와 기자 모두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는데 걸쭉한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내공이 한참 모자라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수십번 씩 조용히 꿀밤을 내 머리에 쥐어박곤 했다.


 휴가를 단 한 번도 가지 않고 아침 뉴스를 진행한 지 딱 1년 11개월째 되던 날. 부장에게 나의 불편한 감정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지금 어린 연차에 현장에서 더 배우지 못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현장 공기를 잘 전달하는 앵커가 되고 싶다고. 내가 취재 실력이 있어야 세상을 보는 눈을 더 키워야 남자 앵커 위주의 판에서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여자 언론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부장은 날 크게 이해해주셨고 회사 에서도 나를 좋게 보는 분위기였다.


 현장 구석구석을 누비고 싶었지만 2년이 다 돼 가는 지금 현실은 아직 경제부에 머물러 있다. 현장을 뛰기보단 '보도' 기능에 충실한 곳이다. 그래도 앵커에서 내려오니 가장 달라진 점은 내가 '기자'라는 직업을 더 소중히 여기고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방송 시작합니다' 귀 너머 들리는 피디의 콜 소리가 아닌, 기자들의 키보드 소리와 취재원과의 통화 소리가 내 주변을 가득 메운다. 또 다른 설렘이다. 큰 특종은 하지 못하더라도 각계각층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공감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다는 점, 기자 설명회에서 장관 인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경험까지 충만하다.


 경제부에서 경제 소식 전반대한 경험을 했으니  정치부나 사회부로 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나를 옭아맨다. 기회가 있으면 다른 현장에 또 나를 내몰아 붙이고 미친개처럼 달라붙고 싶다.

 

 가끔씩 그래도 흔들린다. 부모님의 아쉬운 시선도 그렇고 누군가 '너의 장점은 진행인데 기회를 못 살린다'는 말을 해 올 때면 그렇다. 사람들이 소개하는 나의 프로필은 '앵커 했었는데 지금은 아닌 애'가 되었다. 전직 의원이나 전직 장관처럼 '과거의 영광'을 대듯 말이다. 씁쓸할 때도 있다.


 나침판 바늘이 흔들리더라도 한쪽을 가리키듯 나도 흔들리더라도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가끔씩 땜질 처방으로 불려 가는 방송 자리는 진행 실력을 다시 닦는 건 물론이고 내가 얼마나 내공이 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점검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늘 내가 맞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유형이었다. 남들이 시켜서, 남들이 좋다고 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선망하는 자리지만 기꺼이 내려와서 기본 abc를 배우고자 한 것뿐 이상 그 이하도 아닌데 사람들은 내 결정이 자꾸만 신기한가 보다.  이제 누군가 물어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더 멋진 사람이 되려는 중 입니다 라고. 아직 여전히 부족하고 우왕좌왕하지만. 좋은 기사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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