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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Dec 26. 2020

무신경하지 않는 삶


 크리스마스에도 출근했다. 요새 나의 일터는 국회. 성탄절에 거룩한 근무를 같이 할 선배들을 위해 쿠키를 좀 사들고 가기로 결심한다. 프랜차이즈는 싫어서, 가는 길이 멀어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골목길에 있는 작은 카페를 두드렸다. 나는 알고 있다. 최근에 개업한 카페라는 걸. 그리고 이른 시간 손님이 있으나 없으나 늘 디저트를 굽고 계시다는 걸. 이제야 오게 돼 죄송스러운 마음을 안고 아메리카노 한 잔과 에그타르트 4개를 주문했다. 오븐 안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타르트를 기다리며 매장에 잠깐 착석했다.


 "기다리는 동안엔 잠깐 앉아도 되지요?"

 "네, 그럼요. 1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휴일 오전 8시. 타르트를 굽는 사장님의 등이 잔뜩 신이 났다. 나는 잠깐 앉아 먼저 나온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목 뒤로 넘긴다. 어릴 적 봤던 샤파 연필깎이에 노란빛이 감도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인다. 이윽고 사장님이 다 구워진 타르트를 정성스럽게 싸주신다. 감사의 뜻으로 마들렌 2개까지 얹어주신다. 1만 3000원짜리 주문 치고는 넘치는 호의다.


 매장 내 착석이 안 되는 카페. 정말 집 앞, 회사 앞 테이크아웃 전문점이 아니면 이 추운 날씨에 누가 구석구석 카페를 찾아 돌아다니겠는가. 그래서 나라도 '착한 소비'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한 군데씩 방문을 실천 중이다. 큰돈은 아니지만 마음이 왠지 넉넉해진다. 연거푸 상처를 받았던 요즘, 조그마한 호일 테두리 안에서 야무지게 부풀어 오른 타르트에 위안을 얻는다.


 '방송'과 '기자'라는 생태계 안엔 "내가 제일 잘 나가"라는 마인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건강하게도 보이지만 때로는 불편했다. 상처를 받았다. 남의 이야기를 아무렇게 자신의 안줏거리로 삼는 사람들. 취재를 위한 정보질, 자신의 위신 세우기에 철저히 계획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나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얘기도 해 보아도 돌아오는 건 '프로예민러' 딱지다. "너무 생각이 많아", "아우, 괜찮아" 등등의 이야기. 남의 아픔을 아무런 거름망 없이 공개하는 사람들이 기자 세계에 꽤 많이 존재한다는 건 언제나 적응이 안 되는 일이다. 


 나는 남들보다 더 생각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이번처럼 국회 코 앞 커피숍을 놔두고 굳이 먼 거리를 돌아 골목 카페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들고 가다 옷에 다 쏟고 새 신발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수습기자 시절에도 회삿돈이라고 펑펑 돈 쓰는 게 싫어서 택시 대신 버스를 타고 경찰서를 돌았다. 앵커를 할 시절에도 '예쁜 외모 가꾸기' 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단 믿음에 "저 오늘 예쁘게 나왔어요"류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자제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의 상황, 눈치에 짓이겨 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남들 다 무신경할지언정, 무신경하지 말아야 할 것엔 무신경하지 않고 싶다. 더 또렷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싶다. 대신 남들이 나에게 보내는 질책이나 농담 섞인 깎아내리기엔 조금 더 무신경해지고 싶다. 무신경하지 말아야 할 것과 무신경해져야 할 것을 구분하는 삶, 상처를 딛고 날갯짓을 하려는 2021년 나의 목표다. 이미 숱한 오해와 시선이 씌여있지만. 서툴지만, 언행일치를 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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