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마지막으로 춤을 췄더라. 다시 질문하자면 어떻게 춤을 추는 거더라? 미리 말하자면 나는 파티라면 두드러기가 날 만큼 어색한 사람이다. 손에 술이라도 들고 있지 않다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까닥이는 일도 힘든 사람이다. 페스티벌 현장에 와서야 나는 까진 뒤꿈치보다 더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다.
‘Another love story’의 입구장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아영과 기념사진을 하나 찍고 난 후였다. 닥터마틴부터 화려한 귀걸이까지 모든 걸 갖췄는데 춤출 마음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EDM 음악에 자연스레 몸을 흔드는 사람들을 우두커니 쳐다봤다. 낮술은 애미애비도 몰라본다는 말이 실감 나는 풍경이었다. 모두가 흥에 취해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춤을 췄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나마 다행인 건 비슷한 곤혹감을 느끼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술을 한 잔 마셔야 춤출 수 있겠는데요.”
맨 정신은 춤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우리는 얼마 없는 사회적 체면과 자의식을 벗어던지기 위해서 비장하게 가져온 캔맥주 하나씩을 땄다. 돌아가는 날 짐의 양을 줄여야 했고, 부끄러움도 사라지게 해 줄 술. 마치 수영장 입수 전의 준비운동처럼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분위기에 적응할 겸 축제 장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야외 대공연장부터 클럽을 방불케 하는 작은 공연장, 천막 공연장까지 동시간에 여러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춤추는 사람들의 몸짓을 유심히 살폈다. 레퍼런스라도 좀 익혀야 몸을 흔들기 쉬울 것 같았다. 무대 앞쪽으로 나와 무아지경 춤을 추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인파에서 떨어져 추는 듯 마는 듯 리듬을 타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목발에 화려한 조명을 칭칭 감고 온 아저씨와 아기를 안고 격렬하게 몸 흔드는 엄마, 노인 커플도 더러였다. 워터밤에 한번 가보고 싶은데 나이 때문에 망설여진다는 오십 살의 이웃이 생각나기도 했다. 모두를 위한 페스티벌. 어나더러브 스토리의 첫 느낌이었다.
취기에 힘을 얻어 춤추는 인파에 합류했다. 뻘쭘할 때마다 손에 든 맥주를 생명을 신묘한 약처럼 들이켰다. 어깨를 조금씩 흔들다가 고개도 흔들고 손을 뻗어 흔들면서 몸을 예열했다. 슬슬 손에 들린 맥주가 귀찮게 느껴졌다. 우리는 고생 끝에 도착한 페스티벌에서 뽕 뽑는다는 결기로 춤을 췄다. 맥주는 춤을 추게 하는 연료였고, 음악은 그치지 않았다. 자정을 넘어서자 자리를 옮겨 아담한 야외 공연장에 갔다. 체구가 몹시 작은 DJ가 컨트롤러의 버튼을 누를 때마다 우리는 머리를 흔들며 열광했다. 갑자기 전기공급이 끊겨 음악이 끊기는 상상이 커다란 비애로 느껴질 만큼 열광적인 현장이었다. 문득 빨간 구두를 신고 밤새도록 춤을 추는 소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빨간 구두로 춤을 추는 게 나을까, 워커를 신는 게 나을까. 둘 다 발목이 성치 않을 거라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어느덧 새벽 두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춤을 춘 지 다섯 시간이 훌쩍 넘었다는 소리다. 나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결국 불쑥 튀어나온 넓적한 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영은 여전히 인파 속에 섞여 열심히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탈골 조심해요, 아영 씨. 그 말을 속으로 하면서 나는 서서히 감기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한참 뒤에 나를 발견한 아영 씨가 옆으로 다가왔다.
“언니 괜찮아요?”
“다리에 쥐가 나요.”
나는 오른쪽 다리를 뻗어서 계속 주무르며 말했다. 아영 씨는 웃으며 말했다. 자신은 어깨에 열이 난다고. 주로 어깨를 움직이는 춤을 춘 아영에게 정직하게 찾아온 통증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개다리춤을 춘 거라고 상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 그만 들어가서 쉴까요?”
“좋아요.”
우리는 격렬했던 전투의 부상자들처럼 서로에게 의지하며 텐트로 향했다. 공연장에서 텐트장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만 음악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멀리 보이는 우리들의 작고도 소중한 파란색 텐트. 몇 번이나 내던지고 싶었던 돌덩이 같은 가방을 가져온 이유. 황량한 들판에 텐트가 얼마나 든든해 보였는지 모른다. 우리는 대강 이를 닦고 작은 텐트 속 침낭 속에 누웠다. 이 작은 침낭이 밤의 우리를 지켜주길 바라면서.
단잠이 들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나는 추위에 수시로 눈을 떴다. 너무 추웠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추위였다. 바닥에 깐 종이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모두 막아주지 못했다. 특히 발과 얼굴이 추웠다. 나는 침낭 속에서 계속 발을 비볐다. 마치 부싯돌을 부딪혀서 불을 만드는 원시인처럼. 하지만 그럴수록 추위는 더 맹렬하게 느껴졌다. 아영은 아이들과 캠핑을 가면 침낭도 없이 맨바닥에서 이불 없이 잔다는 잔인한 무용담을 이야기했다. 더 안 좋은 조건을 떠올리면서 지금을 이겨내라는 격려 같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을 깨어났다가 새벽녘이 되자 완전히 정신이 들었다. 텐트 천장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이슬, 밤새 내린 비로 축축해진 바닥으로 발이 다 젖은 것이다. 찝찝하고 춥고 온몸이 쑤셨다. 결국 나는 완전히 깨어났고 아영을 살펴봤다. 숨을 고르게 쉬는 걸 봐선 살아있는 듯했다. 아영은 완전히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가 계속 춥다고 말했어요. 추워요, 추워.”
아영은 그 말을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던 걸까. 춥다고 말을 한다는 건 아직 살아있다는 거니까 조금 안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비가 내리는 축축한 텐트 안에 누워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문득 둘이서 여행을 온 게 처음이라는 새삼스러움에 감격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추위와 냉기를 녹이기 위해 일어났다.
아침 안개가 자욱한 풍경 속에 옹기종기 텐트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저마다 숙취와 추위를 끌어안고 있을 텐트 안의 사람들을 상상하며 뜨거운 커피를 사 마셨다. 마치 쌍화탕 같은 커피였다. 마시니까 힘이 났다. 날이 밝아오자 우리는 서로의 꾀죄죄함을 인지했다. 워커를 신어도 양말에는 진흙이 묻어있었다. 축제장의 샤워부스는 한화로 5천 원 정도였는데, 덜렁 놓인 샤워부스 하나가 영 못 미더워 보였다. 아영은 아이디어를 냈다. 돈도 아낄 겸 강물에서 수영하는 거로 샤워를 대처하자고.
‘어나더 러브 스토리’가 강물에서 수영을 즐기고 들판에서 요가와 명상을 하는 페스티벌이라는 소개를 기억하는지. 페스티벌 장소 옆에는 정말 자그마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여름이라고 해도 얼음물처럼 차가웠던 킨세일 비치를 떠올리며 불안했다. 그래도 강은 덜 춥지 않을까라는 건 역시 오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강물에 살짝 발을 담갔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돌아섰다. 온몸을 담그는 건 안 되겠다고 중얼거리는 동안 아영은 몸에 물을 끼얹으며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강에는 헐벗은 청춘들이 오들오들 떨면서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젖은 머리를 한 손으로 넘기며 서로에게 물을 끼얹는 장난을 치며 다정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어쩐지 같은 물에 놀기가 좀 머쓱했다. ‘어이구 여기 핫하네.’ 나는 인자한 어르신처럼 웃으며 강물에 몸을 담갔다. 엿같이 차가운 강물, 엿같이 아름다운 청춘들. 그리고
“언니, 잠수해요! 머리 감는 거 대신!”
엿같이 생활력이 강한 아영.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물에 뛰어들었다 나온 아영의 이마에서 물이 떨어졌다. 잠수 한 번으로 머리 감기를 대신한 아영을 보면서 나는 예감했다. 그다음 차례는 나라는 것을.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웠지만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강물에 집어넣었다. 사이좋게 잠수를 한 우리는 강에 더 머물지 않고 사다리를 타고 걸어 나갔다. 바다 수영도 강물에서 머리 감기도 아영 덕분에 한 최초의 경험이었다. 우리는 아무리 추워도 강물에서 뛰어노는 헐벗은 청춘들을 뒤로하고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어느새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나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