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마틴 워커

by 수미


스물세 살, 산악 리포터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산세 좋은 곳에서 하루 비박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고작해야 동네 뒷산 오르는 게 전부인 내가 어떻게 산악 리포터로 일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편안한 집을 놔두고 굳이 침구와 먹을 것을 챙겨 산을 오른다는 게 놀라웠다. 내 키의 2/3만 한 배낭을 메고 설악산을 오를 때 의아함은 분노가 됐다.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가 없었다면 등에 접착제처럼 붙은 배낭을 벗어던지고 하산하고 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구 반대편, 아일랜드에서 다시 한번 거대한 짐을 마주하게 됐다. 2박 3일 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한 짐이었다. 짐 양만 보면 이사를 간다고 해도 무방했다. 잠을 자기 위한 도구만 챙겨도 엄청났다. 두 개의 침낭, 텐트. 여기에 수건, 여벌옷, 세면도구, 텀블러, 맥주와 컵라면. 무거워도 선글라스는 특별히 두 개를 챙겼다. 아영과 나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묵직한 백팩을 메고 또 큼지막한 보조 가방도 따로 들었다. 텐트 용품이 든 가방은 도무지 혼자 들 수 없어서 아영과 같이 들어야 했다. 우리는 오로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코크에서 5시간 떨어진 축제 현장까지 가야 했다. ‘18세기에 만들어진 저택인 킬리온 매너를 중심으로 요가, 수영, 명상을 함께 즐기는 축제’라는 낭만 가득한 축제 설명만 들었을 땐 몰랐던 문제였다. 낭만을 느끼기 위한 여정은 지난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더블린과 축제장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있다는 사실. 더블린까지만 간다면 일사천리였다. 하지만 집에서 출발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예상치 못한 아픔이 찾아왔다.


발뒤꿈치가 까진 것이다. 편한 조리와 운동화에 익숙했던 발은 워커의 단단함에 비명을 질러댔다. 피부가 까지고 벌겋게 피가 묻어났다. 양말 하나로는 버티지 못할 쓰라림이었다. 대체 멋쟁이들은 워커를 어떻게 신는 거지? 그들은 강철 뒤꿈치라도 가지고 태어나는 걸까? 아영과 나는 축제를 앞두고 거금을 들여 닥터마틴 워커를 장만했다. 워커가 축제의 필수품이라는 가게 동료의 말을 들은 이후였다. 그 말을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 필요가 있었는데.


우리는 페스티벌이 아일랜드에서의 마지막 이벤트라는 것, 둘이서 떠나는 2박 3일 여행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면서 사치를 부렸다. 나는 빈티지한 느낌의 갈색 워커를, 아영은 깔끔한 검정 워커를 샀다. 가격표를 확인한 후 아영은 그냥 저렴한 등산 브랜드의 워커를 사는 게 어떠냐고 권했지만 나는 닥터마틴을 고집했다. 닥터마틴은 락밴드와 멋쟁이들만 향유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이 아니라면 죽을 때까지 신을 일이 없어 보여서. 그렇게 집으로 가는 길 손에 들린 워커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마치 닥터마틴 워커가 축제의 입장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화려한 귀걸이와 집시 느낌이 나는 옷을 갖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술이 달린 알록달록한 귀걸이와 오리엔탈풍의 원피스를 입었다. 누가 봐도 축제에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로니는 아침에 내 옷차림을 본 소감을 옥수 씨에게 이렇게 전했다고 했다. ‘엄마가 엄청 꾸미고 나갔어요!’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기대감 때문인지 워커가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는데 차츰 쇠로 만든 신발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해서 걸었다. 나는 쓰라린 발 뒤꿈치를 사정없이 까지게 한 워커가 점차 원망스러웠다. 앉을 곳만 보이면 냅다 앉았다. 고통에 시달리는 발을 위한 배려였다.


“아영 씨는 발 안 아파요? 저 뒤꿈치 다 까졌어요.”

“이미 아침에 워커 신고 시티 다녀오면서 발을 적응시켰죠.”


아픔을 적응시키다니. 나는 아연한 얼굴로 아영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도 아프긴 한 모양인지 두꺼운 양말을 하나씩 더 껴 신자고 말했다. 우리는 양말 두 개씩을 신고 더블린 가는 버스를 탔다. 더블린에 도착해서 20분 정도만 걸으면 셔틀버스 승차장이라고 했다. 축제 장소는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외곽지역이었고 셔틀버스는 하루에 단 한 대였다. 꼭 셔틀버스에 타야만 했다. 아영은 구글맵만 있으면 천하무적이라고 든든하게 웃었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펍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20분과 워커를 신고 걷는 20분은 다르다. 나는 워커에서 빠져나와 발을 쉬게 해 줄 버스가 간절했다. 축제 장소로 순간이동할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고 팔고 싶은 심정이었다. 원한다면 두 권의 책 인세까지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악마는 내 영혼도 책 인세도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리어 얄궂은 장난을 쳤다. 구글맵으로 잘못된 장소를 알려준 것이다. 이 점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나는 그날 구글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깨졌다.


구글맵이 알려준 장소는 한적한 편의점 앞이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버스는 없었고 축제에 갈만한 사람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셔틀버스가 도착할 시간을 넘기자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초조해진 아영이 편의점에 들어가서 ‘혹시 여기에 축제 셔틀버스가 오는 곳인가요?’ 물었고 점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혹시라도 아영의 구글맵이 오류가 난 것일지도 모르니까. 지도앱에 주소를 넣자 완전히 다른 장소가 떴다. 걸어서 15분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우리는 밑져야 본전이라며 서둘러 지도앱이 가리키는 새로운 곳으로 달려갔다.


나는 엉망진창인 아일랜드의 대중교통 체계에 희망을 걸었다. 한국과 달리, 아일랜드의 시내버스는 온라인 시스템도 교통앱도 없었다. 약속장소에 빨리 도착하고 싶다면 신에게 기도하는 게 최선이었다. 같은 번호의 버스가 텀 없이 연달아 도착하는 경우도 더러였다. 그러니까 이미 셔틀버스의 출발 시간을 10분 넘긴 상황이라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를 악물고 뛰면서 버스 기사의 급한 용무 혹은 출발을 거부하는 진상 승객을 바랐다.


허겁지겁 진짜 셔틀버스 승차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출발 예정시간을 20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버스가 서 있었다. 축제 이름인 <Another love story> 라고 적은 종이가 창문에 붙은 버스. 버스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남자 승객의 모습은 여유로워 보이기만 했다. 일단 우리는 짐칸에 원수 같은 백팩과 거대한 보조가방을 싣고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가져온 물을 나눠 마셨다. 출발 시간이 30분을 훌쩍 넘긴 상황임에도 누구도 항의하는 사람 없이 평온하다는 사실에 신기함을 느끼며.


40분쯤 지나자 한 여성이 여유롭게 탔고 버스는 출발했다. 곧 버스가 떠나지 않은 이유도 알게 됐다. 담배를 태우던 남자 승객의 전처가 타지 않아서였다고. 그는 팔에 문신이 많았고 대단한 멋쟁이처럼 보였다. 굳이 전처라고 알려주는 것도, 전처와 페스티벌에 가는 것도, 초조할 법도 한데 평안한 얼굴을 유지하는 것도 여러모로 비범해 보였다.


나는 워커에서 슬그머니 발을 꺼냈다. 그리고 주위를 살펴봤다. 우리만큼 화려한 옷차림은 없었다. 정말이다. 대부분 티셔츠에 바지, 남방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워커를 신은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나는 운동화를 신고 편안하게 친구와 농담하는 사람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아영 씨, 워커 신은 사람 우리밖에 없어요.”

“그렇네요. 그래도 축제에 가면 많지 않을까요?”


나는 뒤꿈치를 부드러운 천으로 사수하고 있는 운동화 신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들이 나중에 진흙이 잔뜩 묻은 운동화를 보면서 ‘워커 신고 올걸’ 땅을 치고 후회하길 바랐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버스는 부지런히 달렸다. 아일랜드는 목축업이 유명해서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들판을 여유롭게 노니는 양과 소를 볼 수 있었다. 아영의 말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신축 건물의 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에서 아무리 낡은 집도 고쳐서 살기를 권한다고. 새집을 짓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소와 양이 살아갈 땅의 여유를 위해서라고 했다. 빈 땅에 빼곡하게 들어서는 주차장, 아파트... 부동산 투자에 열 올리는 한국에서 살아온 나는 믿을 수 없는 이유였다. 다음 생에는 아일랜드에서 소로 태어나고 싶다는 낭만적인 꿈을 꾸다 보니 어느새 좁고 거친 흙길로 버스가 진입했다. 마치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곳처럼 보였다. 어떻게 이런 장소에서 페스티벌을 할 생각을 했을까. 기획자는 운동화를 신고 여유롭게 근방을 둘러봤을 것이다. 적어도 워커를 신고 걸었다면...


“이 버스 놓쳤다면 우린 축제 못 왔겠어요.”


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은 한 아일리쉬의 전처에게 감사했다. 버스에서 내려 수풀이 우거진 땅을 밟았다. 비 오지 않은 날이 드문 아일랜드답게 흐린 날씨였다. 곧 비가 내린다고 해도 놀랍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짐을 들었다. 주차장에는 자동차 트렁크에서 짐을 내려 바퀴 달린 캐리어에 싣고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자동차는 얼마든지 짐을 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넣을까 말까 고민했던 슬리퍼도 가뿐하게 넣을 수 있을 공간도 있었다. 부러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캐리어에 짐을 넣고 걸어가는 사람 옆에서 우리는 두 손과 두 발로 짐을 이고 들고 걸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혼자선 이 먼 곳의 페스티벌에 갈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놀랍게도 아영과 함께라면 별별 고생도 인생의 깜짝 이벤트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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