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너무 짧고 2박 3일은 너무 길다. 첫 페스티벌의 소감이었다. 새벽까지 춤을 추던 광기의 첫째 날이 지나고 폐허의 둘째 날. 그리고 죽기 직전의 셋째 날이 밝았다. 나는 슬슬 부츠에 끈질기게 달라붙는 진흙이 지겨워졌다. 스텝들은 수시로 젖은 땅에 지푸라기를 뿌렸는데 계속 오는 비를 당해낼 수 없었다. 마르기도 전에 비가 내렸고, 또 내렸으니까. 나는 차츰 맥주 마시는 양을 줄였다. 화장실에 가는 횟수를 줄이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이었다. 어나더러브 스토리에서 만난 화장실은 자세한 묘사를 못할 만큼 지저분했다.
차츰 도시의 아스팔트 길이 그리웠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실에서 목욕하고 등이 배기지 않는 곳에서 자고 싶다고 맹렬하게 소망했다. 하지만 축제장소와 더블린을 오가는 단 한 대의 셔틀버스는 오후 다섯 시나 되어야 출발했고, 이제 겨우 아침 여덟 시를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비 내리는 천막 아래에 앉아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평생 들을 EDM을 삼일동안 몰아들은 것 같았다. 고개를 까닥거릴 기력도 없었다. 아영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콜택시를 불러 정류장까지 가자고 했다. 걸어간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천근만근 같은 짐이 있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콜택시를 부르기 위해 아영은 스텝에게 방법을 물었고 그의 언어회화 능력은 빛을 발했다. 적어도 내게는 진흙 구렁텅이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아는 히어로처럼 느껴졌다. 물론 아영도 곤란해 보였으나 마침내 필요한 정보를 알아냈다. 콜택시 번호였다. 우리는 신이 내린 유니콘처럼 기적처럼 나타난 콜택시를 타고 정류장까지 갔다. 워커는 이미 벗어던진 지 오래였고, 두꺼운 양말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코크의 한 헌 옷 가게에서 산 빅사이즈 바람막이를 입고 모자를 꾹 눌러썼다. 철저히 보온과 편안함이 우선된 착장이었다. 첫째 날 꾸밀 대로 꾸민 모습과는 완전히 멀어진 모습이었다. 더블린 거지도 형님하고 부를 만한 행색, 이틀 연속 강물에 씻은 내 몸에 대해선 내 영혼마저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다.
곧 씻을 수 있다는 기대로 우리는 힘내서 짐을 옮겼다. 문득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갑자기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고, 아비규환에 빠지고, 다시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한 커플은 천천히 목욕을 즐긴다. 나는 그 장면이 오래오래 마음에 남았다. 안전한 곳에서 적당한 온도의 물을 사용해 스스로 씻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존엄한 일인지. 나는 존엄해지고 싶었다.
아영이 예약한 숙소는 마이클의 추천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이클이 추천한 곳은 다른 곳이었다.)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 도착한 객실에는 두 사람이 눕기 넉넉한 침대가 있었다. 깨끗하게 씻고 누우면 얼마나 기분 좋을까. 우리는 기대로 부풀었다. 짐을 한구석에 밀어놓고 먼저 씻기로 했다. 하지만 화장실에 다녀온 아영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언니, 물이 안 내려가요.”
곧 상황을 전달받은 지배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욕실의 상태를 점검하더니 수리를 바로 할 순 없다고 뻔뻔하게 말했다. 방을 바꿔달라는 요구에는 만실이라서 안된다고 했다. 대신 물이 넘치면 닦을 수건을 더 주겠다고 했다. 세상에. 하지만 다시 숙소를 알아보고 짐을 옮길 기력이 없었던 우리는 그냥 방을 쓰기로 했다.
“맥주나 마시러 가요.”
아일랜드에 와서 새삼 깨달은 행복의 방법이 있다. 일단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어떤 우울하고 심란하고 슬프고 지친 상황에서도 맛있는 맥주가 가까이에 있었다. 불어날 체중, 알콜 중독에 대한 어떤 고민도 하지 않았다. 맥주는 당연히 누려야 할 삶의 선물이었다. 우리는 적어도 둘만의 여행, 그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맥주를 마셔야 했다.
더블린의 아무 펍에 들어가서 기네스를 주문했다. 아영은 같은 기네스라도 펍에 따라 맛이 다르다고 했다. 그러자 아일랜드가 지도에서 본 것보다 더 광활하게 느껴졌다. 아일랜드에서 평생을 살아도 모든 맥주를 마실 수 없지 않을까. 거품과 함께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킨 아영이 잔을 내려놓고 담담하게 말했다.
“언니는 꼭 아일랜드에 살지 않아도 괜찮을 거 같아요.”
아영은 그동안 아일랜드에서 함께 살기에 대한 고민으로 복잡하고 부대꼈던 내 속을 알았던 것처럼, 여러 번 고민하고 얻어낸 답처럼 초연하게 말했다. 그냥 한 번씩 여러 나라를 다녀보면 언니가 글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아영이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몇 년 후가 됐든 아일랜드에서 같이 살아보자는 아영의 제안에 대해서 어느 순간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더하지 않았다. 눈치 빠른 아영은 나의 태도를 일종의 답변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로니가 캠프에 간 오전부터 이른 오후까지 코크 일대를 걸어 다니며 아일랜드의 삶을 상상했다. 부대낌 속에 자학이 있었다. 나는 왜 아영처럼 굳건하게 실행하지 못할까. 삶의 배경을 바꿔보는 선택을 주저할까. 한국이 뭐가 좋아서! 한국이 해준 게 뭔데!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스럽고 회피하고 싶었던 결정을 아영은 또 다른 제안으로 치환했다. 아영은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쉽게 저지르지만 동시에 겁 많고 소심하고 정 많은 사람이라는 것. 낯선 세상에 대한 동경, 재밌는 일을 기록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정서적인 평온은 한국에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사람.
아영이 좋아하는 밴드인 검정치마의 <틀린 질문>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에게 뭐든 물어봐. 틀린 질문도 괜찮아. 틀린 질문에도 바르게 대답해 준다는 가사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아이러니 덕분인지 나는 아영이 생각나면 이 노래를 듣곤 했다. “나도 아일랜드에서 살 수 있을까요?”라는 틀린 질문에 아영은 바른 대답을 해준 것만
같았다. 삶이 긴 여행이라면, 단지 수미의 방법으로 여행을 하라고.
우리는 약속한 것처럼 새로운 맥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다시 배수구가 막힌 숙소로 돌아왔다. 아주 천천히 물이 내려가긴 했으나 머리를 감느라 쓰는 물의 속도보다 늦었고, 물은 계속 넘쳤다. 지배인이 준 수건은 소용이 없었다. 최대한 물을 적게 쓰는 방법으로 몸을 씻었다. 막힌 배수구의 절망은 샤워실에 가둬두고, 우리는 나란히 흰 가운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 아영은 휴대폰에서 그랜드 브라더스의 공연 영상을 재생했다. 페스티벌에서 보고 완전히 반한 그룹이었다. 피아노와 디제잉의 결합. 어쿠스틱 한 멜로디와 전자음으로 만들어낸 리듬의 조화는 마치 안개가 낀 숲에서 들려오는 음악처럼 신비로웠다.
“디제이 손 좀 보세요. 손가락도 너무 새칩다!(곱다의 경상도 사투리)”
양 팔목에 찬 근사한 시계. 그리고 컨트롤러 버튼을 누르는 아티스트의 우아한 손짓. 내가 그의 손놀림을 새칩다고 주접을 떨 때마다 웃느라고 아영의 팔이 떨렸다. 어느새 그랜드 브라더스의 투어 일정까지 알아본 아영은 언젠가 콘서트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적당히 단단한 침대에 누워 대화를 계속 이어가다 잠이 들었다. 한 번도 깨지 않은 숙면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