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퀴어 퍼레이드를 다녀와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과 엉겨 붙으며 살아가는 게 사회의 질서이지만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 혹은 본인과 비슷한 사람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억지로 붙여놓은 관계와 떨어져 비슷한 사람을 찾아 동질감을 느끼는 것만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건 없으니까.
한낮 여름에 펼쳐지는 퀴어 퍼레이드를 갈지 말지 고민했던 건 단순히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인파 속에서 혼자 참가해도 즐거울 수 있을지 약간 걱정되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퀴어 퍼레이드를 가본 적이 없어서 괜한 핑계를 대고 있었던 거였다. 혼자면 어때? 분명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을 테고, 거기서 재밌게 잘 즐기다 오면 되는 거 아닌가. 스스로 용기를 불어넣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가끔 그럴 때 있지 않나? 뭐에 홀려서 A를 B로 착각하는 일이. 무더운 여름날, 등을 타고 내려오는 땀줄기와 뜨거운 햇빛에 녹아가는 내 모습은 처량하기만 했다. 대체 왜 을지로 입구를 을지로 4가와 헷갈려서 고생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가 아니구나 싶어서 곧장 지하철을 다시 타고 을지로 입구에 도착하니 오늘을 기다려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몰아치는 열기를 뒤로 하고 곧장 입구 쪽으로 직진하자 바람에 나부끼는 무지개 깃발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서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멀리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은 바로 내 옆에 있었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풍경과 푹푹 찌는 여름 속으로 계속 걸어갔다.
부스는 ㄱ자 형태로 아주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다양한 물건이 판매되고 있어 부스를 다 돌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창 골머리를 앓는 중에 월급이 들어와 방금까지 고민하던 것도 잊고 신나게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전부 살 수는 없어서 물건을 구경하기만 할 때도 있었고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상처가 된 말이 있었는지 포스트잇에 적어보라는 부분에선 곧장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마냥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는 걸 이미 경험해 봤다. 주위에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주고, 악의를 지닌 채 다른 사람의 마음을 휘젓고 헤집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지. 그들과 똑같은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내 이야기라는 이유 하나로 모든 게 부정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겨나는지 알고 싶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다른 것보다 퍼레이드 일정 중에서 제일 걱정됐던 건 행진이었다. 을지로 입구에서부터 명동을 지나 다시 을지로 입구로 돌아오는 아주 긴 코스였다.
‘이 날씨에, 이 거리를 걸을 수 있나? 너무 힘들면 중간에 빠져나와야지.’
그런 맘으로 행진을 기다리다가 아까 구매한 굿즈를 한 번 정리하고 싶어 근처 벤치에 앉았다. 손풍기라도 샀어야 했다고 생각하며 정리를 마치고 고개를 들어 한참 사람 구경을 했다. 도로를 가득 채운 인파가 주는 에너지는 내 예상보다 컸다. 어떻게 참아왔을까? 살아오면서 알아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부정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끈적거리는 풍선껌처럼 내 몸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몇 년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 지독한 시간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너는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고 퍼레이드에 온 사람들이 오늘 제일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퍼레이드가 처음이라 어떻게 무리에 들어가야 하는지 전혀 몰라 눈치를 보면서 슬쩍 행진 코스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이 많구나, 정도로만 느끼고 있었는데 잠깐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끝도 없이 사람들이 줄지어서 걸어오고 있었다. 참았던 감정이 정신없이 부풀어 올랐다 터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토록 많이 있는 모습이, 내 앞으로 걸어오는 레즈비언 부부의 힘찬 발걸음이 나를 눈물짓게 했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어떤 이의 날 선 비난과 모욕은 우릴 무너뜨릴 수 없다. 세상 살아가는 게 뜻대로 되지 않아 삶이 벅차게 느껴지더라도 이번 생에 태어났으니 하루 더 빛날 수 있겠지. 설사 무너진다 한들 나를 일으켜 줄 기둥은 분명히 있을 테니까 오늘은 누구보다 씩씩하게 걸어가기를.
지나가는 자동차와 인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환호하며 우리의 축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끝이 났다. 평소에 5,000보도 걷지 않던 내가 10km를 걸을 수 있었던 건 숨죽여 있다가 한날한시에 모든 압박과 편견, 지긋지긋한 속박에서 벗어난 그들과 함께 걷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축제가 끝나지 않기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혐오는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아주는 날이 오길 바라고 또 바랐다.
글쓴이: 현아 (https://instagram.com/withst4nd)
편집자: 민지
2023. 08.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