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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아 Nov 19. 2023

혼자 산다는 건


 자유엔 책임이 따른다고 한다. 자취하게 되면 그 뜻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혼자라 자유롭고 조용한 일상을 보낼 수 있지만 해야 할 집안일과 나를 돌보는 일은 끝이 없다. 요리한다면 각종 조리기구와 양념들이 필요하고 배달을 시키면 그만큼 자질구레한 쓰레기를 정리하고 분리수거해야 한다. 다 먹었으면 설거지도 해야 하고 음식물 쓰레기로 더러워진 싱크대 청소도 반드시 해야 날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인덕션이나 타일 부분도 닦아줘야 하는데 이걸 쓰면서도 기가 쭉 빨린다. 여기서 끝이냐? 대망의 방 청소와 욕실 청소, 옷장 정리 등이 남아 있다.

 집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작은 집에서도 머리카락은 매일 빠지고 먼지는 자꾸 쌓인다. 돌돌이로 한 번 밀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적어도 5번 이상은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달랑 나 혼자 사는데 이렇게 치워야 할 게 많다니. 대체 모여서 살 땐 얼마나 더러웠는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욕실 청소는 너무 미루고 싶지만 미루다가 묵은 때와 머리카락 지옥에 갇히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바닥과 변기 청소를 하는데 하고 나면 뿌듯하고 행복하다. 다만 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 예열이 필요한 부분이라 늘 제때 하는 법은 없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하지 않던가. 다 끝내면 빨래 지옥에 도착한다. 여름에는 땀이 많이 나서 빨래도 자주 해야 하는데 운동을 하면 두 배로 힘들어진다. 가뜩이나 습도가 높아서 빨래도 잘 안 마르는데 비까지 오면 강제로 빨래는 뒤로 밀린다. 문제는 가을~겨울이 다가오는 시점이다. 한 벌 당 부피가 큰데 세탁기는 이를 다 수용하기엔 턱없이 작아 한 번에 빨래하는 게 불가능하다. 겨울맞이 이불 세탁도 해야 하지 않나? 겨울에는 모든 걸 내려놓고 빨래방으로 향한다. 거기서 1시간 정도 할 일을 하거나 책을 보고 있으면 빨래가 끝이 난다.

 집안일에 관해 썼을 뿐인데 벌써 글자 수가 꽉꽉 들어찬다. 이 모든 일을 다 하면 나를 돌보는 일도 해야 한다는 게 쓰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 회사에 다니면서 집안일을 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를 다독거리는 일이 제일 어렵다. 집에 와서 운동하고 씻고 먹고 하다 보면 10시~11시까지 금방이다. 내일이 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이라 초조하다. 깊이 생각하지 말고 적당히 재롱부려 기분이 좋아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마무리가 되겠지만, 머리가 아플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즐겨 보는 예능 프로그램도 잔잔한 피아노 연주나 팝송도 소음으로 여겨져 집안을 무소음으로 만든다. 못해도 12시나 1시 전에는 잠들어야 내일 일정도 무사히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머리로만 알고 몸은 쉽게 잠들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면서 활자 읽는 것에 집중한다. 시시껄렁한 글들을 보고 있으면 머리를 가득 채운 고민거리나 생각들을 뒤로 미룰 수 있다..

 가뜩이나 정신 관리 하는 게 중요한 사람인데 혼자 살지 않으면 상태가 악화될 거 같아 급하게 서울로 올라왔다. 집은 여전히 좁고 가끔 튀어나오는 바퀴벌레를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돈에서 최선을 선택했고 이 조그만 집에서 나는 계속 나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돌볼 것이다. 집 근처에 있는 시장과 카페, 빨래방, 세탁소와 헬스장, 맛집들을 다니며 오늘의 내가 잔걱정 없이 잠들 수 있기를 바란다.







글쓴이: 현아 (https://instagram.com/withst4nd)

편집자: 민지

2023.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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