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삭
세상은 거대하고
곰팡이는 보이지도 않는다.
세상은
우리가 딛는 이 땅,
우리를 감싸는 공기,
우리를 지켜보는 하늘,
그 모든 만물이다.
곰팡이는
마룻바닥 아래 숨어
들춰보아야만 겨우 보일 작은 존재.
세상에 비하면 곰팡이는
먼지보다도 하찮은 미물.
그러나,
곰팡이는 우리 삶과 닮아 있다.
보이지 않는 틈 사이를 비집고 스며들어
집을, 우리를, 나 자신을 갉아먹는
검고 끈적한 존재.
곰팡이는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아
나도 모르게 뿌리내리고,
어느새 나를 무너뜨린다.
작고 하찮다 여겼던 그것이
온 마음을 뒤덮고, 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저 거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의 세상은 조그마한 점일 뿐이지만,
내 마음속 곰팡이는
우주보다 더 큰 나의 전부.
나는 언제쯤 곰팡이로부터 벗어나
저 광활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혹은,
곰팡이가 이미 내 세상이 된 건 아닐까.
나는 오늘도 내 마음의 가장자리에서
곰팡이와 사투를 벌인다.
손가락 끝으로 긁어내도,
그 자리에 다시 번지는 검은 흔적.
곰팡이를 떨쳐내지 못한 채,
나는 또 나를 갉아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