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낡은 시계

4막. 그믐


내 팔목에

조용히 매여 있는 낡은 시계.

시계는 고장난지 오래 됐어요.

오래전 멈춘 그 시계에

더는 배터리를 바꿀 생각도 없어요.

이젠 시계 없이도 하루는

저절로 흘러가더라고요


일어나고

이불을 개고

밥을 먹고

약을 챙기고

창밖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냥, 해가 져요.

마냥 해가 집니다.

그러고 나면 언젠가 또 해가 뜨겠죠.

내 하루는, 그게 다예요.


예전엔 다섯 시만 되면

마치 종이라도 울린 듯

밖으로 뛰쳐나갔죠.

시간이 없었거든요.

젊은 나는, 스물네 시간으로도

늘 모자랐어요.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남아돌아요.

그런데 그 시간들이

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도무지 이름을 붙일 수가 없어요.

요즘 젊은이들 말로 하자면—

시간 죽이기, 라고 하나요?


그래도,

가끔은 여섯 시 반쯤

당신이 오던 발자국 소리를 기다려요.

텅 빈 복도 끝에서

점점 다가오던 그 리듬을요.


이제, 내게 시간이라는 건

시계보다

기억 속 발소리에 더 가까워졌어요.


그리고 지금은,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내가,

조금씩 흐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숨 쉬기도 벅찬 요즘,

마냥 남아도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끝도 없이 쌓여가는 순간들 속에서

오히려 가장 고민스러운 게—

바로, 이 시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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