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막. 그믐
피우다
담배를 피우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연기가
잿빛 안개처럼 시야를 가린다
빨아들인 숨결 속에서
무엇을 건지려 했던 걸까
입안은 금세 비어 있고
남은 건 희미하게 사라지는 냄새뿐
피우다
냄새를 피우다
쿰쿰하면서도 달아나는 그 냄새가
방 안을 한 겹 둘러싼다
스며들었다 싶으면
어느새 오래된 기억을 끌어올리고
곧 사라질 걸 알면서도
다녀간 자리만은 남기는 것처럼
피우다
불꽃을 피우다
차곡차곡 쌓인 장작 위로
붉은 숨이 산다
그 뜨거움은 어둠을 밀어내고
태운 것들만 남긴다
잠깐이었어도 빛났던 시간,
그 잿더미 아래에서조차
또 다른 무언가가 움틀 것만 같다
피우다
꽃을 피우다
수없이 견디고서야 드러난 모양
바람에 기울고 빗속에 젖어도
꽃은 그저 자기 빛을 다할 뿐
짧은 순간에 겹겹이 쌓인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듯
핀다
이제는 내가
저 멀리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피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피어나려는 몸짓
그 발걸음 속에 깃든 것은
타버릴 불꽃이 아니라
움트는 생명의 의지다
내가 피워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짧아도 눈부신 한 때일까
아니면 조금씩 쌓여 남는 흔적일까
담뱃잎을 으깨
손끝을 물들인 채
나는 조용히 하늘로 흩뿌린다
언젠가, 내 안의 어떤 것이
정말로 피어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