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축복이 되는 순간

3막. 보름


아 뭐야 우산 안 챙겨 왔는데

어쩌지 일단 곧 그친다는데 기다려볼까

그러자 소나기겠지


공부하던 중

잠깐 친구와 밥 먹으러 나온 그 식당 앞에서

언젠가 비가 멈추리라 생각하며

조용히 빗소리를 듣는다


일기예보에는 비 온다는 소리 없었는데

그칠 기미가 안 보이네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는 굵어지고

식당으로 들어가는 사람들한테 치여서

더 이상 기다리기엔 눈치가 보였다


편의점에서 우산 사서 같이 쓸래?

제일 가까운 편의점만 해도 10분이야

아 제기랄


어느덧 비는

우리 사이의 사소한 재앙이 되어

집도 독서실도 어디 갈 데도 없이

이 조그마한 가림막 아래에서

오들오들 몸을 떤다

젖은 바닥 냄새가 코끝에 차오른다


그러다가

친구가 씨익 웃으며

하는 말


미친 짓 한 번 해볼까?

무슨 미친 짓

그냥 비 맞고 가자 뛰면 금방일걸

야 나 이거 새 옷인데


말을 채 다 하기도 전

친구는 빗속 안으로 덤벼든다


아 미친놈아


친구는 즐거운 듯 온몸으로 만끽하며


너도 빨리 와

젖으면 우리 집에서 씻으면 되잖아


아 진짜 이거 맞나

나도 한 걸음 내딛는다

빗방울이 내 발끝부터

차르르르

운동화 안까지 밀려 들어와

날 적시기 시작한다


시원하지?

시원은 하네

비 맞은 김에 좀 더 맞다 갈까?


평소라면 당연히 거절했을

터무니없는 소리

그런데 왜일까

비가 조금 적셨다고

어린 날의 동심으로 돌아간 걸까


그래 어차피 젖었는데 그냥 끝장을 보자

공원에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아이스크림 사는 거다?


친구랑 비를 맞으며 저 멀리로 뛰어간다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시선은 느꼈지만

뭐 어떤가

우리가 즐거운데


아 진짜 빠르네

갑자기 뛰는 거 뭔데?

이건 아니지


말은 이렇게 해도

우리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한참 달려 있다

숨이 차서 말이 끊기는데도 계속 웃는다


비 하나 맞았을 뿐인데

무언가 기분 좋은 이 순간


아까는 분명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던 비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일부러 더 들어가고 싶은 쪽이 됐다


나와 친구는

우산도 없이

젖은 채로

이 도시 한가운데를

그냥 뛰어다닌다

새로운 축복인 비를 잔뜩 뒤집어쓰며.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