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Confrontation] 거울 저편 4
중간장. 과거. 스스로의 부정
by 나는 달을 건너는 중입니다 Feb 23. 2026
중간장
과거
스스로의 부정
“자기야, 왔어?”
“내가 늦었지.. 미안.”
연인이 생겼다. 고깃집에서 일하다가 눈이 맞아버렸다. 남들은 주인집 밑에서 일하는 노비들끼리 눈이 맞은 거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뭐 어떤가. 어려서부터 외모가 제일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마음이 맞는 사람과의 사랑이 더 좋았다. 이 친구도 마음이 좋아서 사귀게 됐다. 물론 얘는 이제 고깃집 알바를 그만뒀다. 그래서 하루에 보는 시간이 절반은 줄은 거 같지만 뭐 어때. 시간 내서 만나는 그때마다 내게는 더욱 소중했다. 연인의 일상이 나의 일상이 되고 내 일상이 우리의 일상이 되는 이 순간. 나는 이 앞에서만큼은 진짜 나를 보여줄 수 있었다. 오늘도 소소하게 영화 보고 저녁 먹기로 했지만, 이런 가벼운 순간들이 우리의 결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어느 날이었다. 얘를 향한 내 마음이 더욱 커짐을 인식했을 때, 계획도 없이 몰래 커플링을 샀다. 가지고 있던 여유자금을 다 털어버렸다. 그때의 나치고는 꽤 거금을 들인 것이었다. 명품까지는 아니더라도 준 명품 수준의 브랜드. 이걸 받고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며 난 하루하루를 버텼다. 주머니 속에 있는 상자를 보기만 해도 웃음이 흘러넘쳤다. 언제쯤 이 반지를 줄지 고민하며, 그 친구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친구 옆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온몸이 살구색 빛을 띄면서.
“뭐야, 갑자기?!!”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아니, 이건 말이야.. 그..”
분명 드라마에서 보면 이런 상황에 꽁꽁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못한다던데, 나는 거침없이 방 밖으로 나왔다. 이 장면을 믿지 못한 스스로의 방어 행위였던 걸까. 오히려 얼어붙은 건 내 머리였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마치 이게 진실이 아니라는 듯, 그 장면으로부터 한 걸음 멀리서 지켜본 느낌이다. 그 와중에 그 친구는 가운만 겨우 걸치고 따라 나오더라.
“온다는 말 없었잖아.”
“카톡 했는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왜 그런 거야?”
그래. 어차피 끝났는데 물어라도 보자. 내가 싫었던 건지, 내 앞에서는 왜 날 좋아한 척을 한 건지, 무엇보다 나와는 아직 하룻밤을 지내지도 않았음에도 왜 이런 건지.
“아니.. 그게.. 하…”
“한숨만 쉬지 말고 말해봐. 나 이해가 안 돼서 그래.”
머뭇거린다. 그치, 할 말이 없겠지. 바람 피다가 걸린 입장에서 그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을 텐데. 그래, 놓아주자. 결혼 전에 안 게 어디야.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가겠다는 듯, 나는 뒤를 돌아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반지함이 만져진다. 이건 어떻게 처분해야 할까.
그때 이 녀석이 소리친다.
“시발! 너를 보면 기분은 좋은데,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 잘생기지도 예쁘지도 않았고, 몸은 완전 노인네 같아. 축 늘어져서는. 그래도 나도 사람인데, 욕구는 풀고 살아야 할 거 아니야. 그래서 그런 거야. 나는 널 사랑하는데, 어쩔 수 없이…”
모든 걸 다 털어놓고서 아차 싶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온다. 아까 그 장면을 마주친 것보다 마음이 더 시렸다.
“너… 그걸 말이라고…”
“미안해. 이렇게 할 말은 아니었는데.”
그냥 내가 질렸다고 말했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나를 사랑하는데 내 모습이 싫어서라니. 모든 책임을 마치 돌리는 것처럼. 분명 반박할 말은 많았음에도, 더 이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줬지만서도, 너는 나한테서 그런 생각을 쏟아내며 아무 내색 없이 나를 만나고 있었구나.
주머니에서 반지함을 꺼내 바닥에 던진다. 그리고 그에게서 서서히 멀어진다. 그 녀석도 나를 잡지 못한 채로, 우리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한참을 울면서 걸어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고는 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걸어오면서 나는 그 녀석에 대한 원망보다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이 마음속을 아울렀다. 내 외형이 예뻤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든 건 다 나 때문이다. 저 친구가 그랬던 건 내가 이래서다. 저렇게 착한 친구를 내가 망쳐버린 거다. 이렇게 생긴 내가 좋은 사람과의 미래를 기약하며 반지를 사간 게 정말 우습다. 누가 쳐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이 감정을, 어떻게든 털어놓는 게 중요하다.
그날을 기점으로 돈을 모았다. 알바도 하루에 2배로 늘렸다. 이렇게 혐오스러운 나 자신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성형을 하리라. 남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진짜 나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나는 다시 한번 내 인생을 거짓말 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