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ception/Reality] 한개의 그릇

by 마리폴네르

누구나 한개의 그릇을 갖는다

그릇은 바뀔 수 있고 원하는 어떤 것이든

선택가능하지만 딱 한개만 가질 수 있다

그릇은 처음에는 그렇게 비워져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갈증이 무척 심했고

마침 그릇 안에는 물이 고여있었다

누가 부어놓았는지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바로 그 물을 들이켰다

그래도 갈증은 여전했다


그 후 갈증이 나던 안 나던 물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먼 길을 떠나 마침내 넉넉한 물을 발견했다

먼저 그릇에 한가득 부어 마신 후에

다음을 위해 물을 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갈증이 나면 언제든 또 실컷 먹고 싶다는 생각에

가득 담았고 돌아오는 길에 반은 넘쳐흘러버렸다

남은 물도 지쳐서 도착하자마자 다 마셔버렸다

그릇은 그렇게 다시 비워졌다


빈 그릇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뭘 한 거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한개만 주어지는 그릇

채우면 다른 것을 담을 수 없고

많이 넣으면 넘치고

무거워지면 옮기기 힘들고

또 비워져 있으면

그저 채울 생각뿐이다


채우기 시작하면 더 채우던지

넘쳐버려도 또 채우려 한다

그저 채울 생각뿐이다


문득 지난날 아침이 생각났다

일어나 보니 그릇에 물이 있던 그날의 아침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마셨고 그게 시작이었다

신이 준 선물이라 생각한 그 물은

자연이 누구든 내어주는

평범한 샘물일 뿐이었다


이제보니 내 그릇은 깨져 있었다

그래서 땅에 꽂아 물을 마셨고

물을 아무리 부어도 늘 부족했으며

들고다니면 자꾸 비워지기만 했다


먼 길 물을 찾아 다시 떠나지 않았다

그저 빈 그릇을 땅에 꽂고 누웠다


달이 밝고 별이 빛났다


아침, 눈을 뜨니 그릇에

다시 물이 고여 있었다

마시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하려다

물을 원하는 이의 그릇에 부어줬다

갈증이 났지만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여기에 물을 채울 수는 없다


누구나 한개의 그릇을 갖는다

그릇에 넣고 싶은 건 내가 선택한다

원하지 않는 것이 들어있으면

덜거나 버리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습관이 생겼다

자기 전에는 늘 그릇을 비워

땅에 꽂고 누워서 별을 센다

그러면 어느새 내 그릇에 달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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