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ception/Reality] 읽지 않음

by 아타마리에


나는 선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누런 장판 위에 휴대폰을 뒤집어 놓으면, 꺼진 액정의 절반 위에 형광등 불빛이 희미하게 반사되며 눈은 잘리고 입만 남아있었다. 멀쩡한 척,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핸드폰이 울릴 때마다, 2미터 밖 발가락 끝까지 그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수화음이 한 번, 두 번… 여섯 번까지 이어진 뒤 부재중 알림이 하나씩 쌓여갔다. 선미의 전화에 응답하지 않은 건 우리가 크게 다툰 보름 전, 그날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선미가 퇴근할 여섯 시 즈음, 나는 은행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W은행이라고 쓰인 간판 아래, 자동문 앞을 드나드는 멀끔한 사람들을 보며 나는 뒷걸음질 쳤다. 유리문 표면에 내가 비쳤다. 은행원처럼 보이려면 어떤 얼굴을 해야 하는지, 유리는 알고 있었다. 슬리퍼를 뚫고 나온 허연 엄지발가락은 서늘한 바람에 닿아 자꾸만 오므라들었다. 담배가 어딨지. 주머니를 뒤져도 담배는 나오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에 닿은 입김이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폐 깊숙한 곳의 공기를 연신 끌어 뱉어내고 있었다.


그날은 마흔세 번째 이력서를 쓰던 날이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날이기도 했다. 아침부터 나는 ‘급한 가정사’라는 변명을 만들어 편의점 사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장의 가시 돋친 문장들은 읽지도 않은 채 지워졌다. 그 가시가 화면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선미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나는 사장의 마지막 메시지 옆 지워지지 않은 (1)을 그대로 둔 채 카톡방을 나와버렸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선미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자동문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피했다. 그 안의 나는 서 있는 형상이었으나, 서 있는 동안에도 얼굴은 한 뼘씩 물러나고 있었다.


은행 문을 열고 나와 내 앞에 선 선미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선미의 유니폼은 새것처럼 뻣뻣하게 깃이 세워져 있었고, 가지런히 여러 번 빗질을 해 낮게 묶은 머리는 누가 봐도 은행원 같았다. 푸르스름하게 투명한 뺨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미는 다짜고짜 화를 냈다.

“아르바이트는 어쩌고, 여기 이러고 있어?”

“이력서 쓰느라고…”

“글은 이제 안 쓰는 거야?”

나는 찌푸려진 선미의 눈꼬리 옆 주름을 세다가 대답할 시간을 놓쳤다. 입이 다물린 얼굴. 선미는 그 얼굴을 보고 있었다. 나는 선미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슬리퍼 밖으로 삐져나온 굳은 발가락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흔세 번째 이력서 때문이었거나. 3개월 만에 관둔 편의점 아르바이트 탓일지도. 아니, 선미의 분노는 애초에 글을 멈춘 내 공백의 시간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날카로운 음성으로 쏟아낸 긴 단어의 나열은 오른쪽 귀를 뚫고 왼쪽 귀로 직진해, 찬 공기 속으로 묻혀 들어갔다. 혼자 들어가겠다는 선미를 그대로 보낸 것은 참고 있었던 담배의 충동 때문이었다. 녹은 눈이 만들어낸 질퍽한 찌꺼기를 밟는 소리와 함께 선미는 멀어져 갔다.


나는 선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칼을 든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나는 배운 적이 없었다. 찔리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고 수년을 말해왔건만 선미는 여전했고, 여전한 것은 나였기도 하다. 나는 험한 꼴을 피하는 대신 침묵으로 버텨야 했다. 아무 말 없이 기다리기만 하면, 선미는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릴 거니까. 방에 갇힌 나는 양발을 덜덜 떨며 그녀가 나를 구하러 오기를 기다렸다. 미안하다는 말은 재떨이에 쌓인 담배꽁초로 대신했다. 뜨거운 꽁초는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이었다. 충분한 벌을 받고 나면 선미는 곧 칼을 내려놓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채 내 방문을 두드릴 참이었다.


우리가 교제를 시작하고 백일이 지났을 무렵,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연락을 피했다. 선미는 이틀 만에 내 방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방문 앞에서부터 눈물을 질질 끌고 들어와서는, 내가 죽었을까 봐 걱정했다고 말했다. 그 후로 내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메시지를 읽씹 하거나, 때론 아예 읽지도 않을 때마다 선미는 며칠 간의 시간 차를 두고 나를 찾아왔다. 처음 내가 버틴 이틀의 침묵은 삼 일이 되었다가 일주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보름이 다 되도록 찾아오지 않는 선미가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아니 원망스러운 것은 나였다.


쌓여있던 부재중 전화 알림을 밀어낸 뒤, 선미의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네모난 프레임 속 와인잔 가장자리에 붉은 립스틱 자국이 선명했다. 태그를 따라가니 그녀가 그토록 험담하던 입사 동기의 계정이 나타났다. 허여멀건한 가슴골이 훤히 드러난 검은색 브이넥 탑을 입고 입을 크게 벌린 선미의 옆모습. 광고 화보처럼 보이는 사진 속 선미는, 마치 허기의 제물로 채워야 할 것이 많은 여자처럼 보였다. 나는 인스타그램 속 허선미의 계정을 다른 누군가가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 직후에는 선미 역시 나와 다름없었다. 우리는 나란히 등단을 꿈꾸며 공모전을 쫓아다녔다. 그러나 채 일 년이 지났을까. 선미는 단 한 번의 낙방도 없이 은행에 취업했다.

“나는 글 쓰는 데 재능이 없는 것 같아.”

포기가 빠르기는 아주 5G를 넘어섰지. 그 뒤로 몇 년간 나는 1월 선미의 생일마다 공모전에서 떨어진 시를 선물했다. 그녀는 나의 글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글을 사랑하는 것 같다고 했다. 떨어져야만 내 세상을 전부 가질 수 있다더니. 나는 그녀를 위해서든 아니든, 떨어짐을 위해 공모전에 시를 써내야 했다. 내 시를 향한 선미의 경모가 시들해질 무렵, 나는 무작정 이력서를 써내기 시작했다.


어쩐지 선미는 내 이력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떤 회사인지, 서류 통과는 했는지, 그런 질문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바닥에 떨어진 부서진 시의 파편을 주워 먹는 데만 관심을 보였다. 그것은 선미의 허기를 달래는 기묘한 의식이었는데, 배고픈 선미는 부스러기를 긁어모으다 슬피 울었다. 이윽고 그녀는 먹이를 찾아 나섰다.


전화기를 잠시 내려놓고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딩동. 알림음에 놀라 손에 쥐었던 마지막 한 개비의 담배를 떨어뜨렸다. 전화도 메시지도 아닌 메일 알림이었다. 잠겨 있는 휴대폰 화면에 조각난 메일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H에게 보내는 마지막…


씨발. 바닥에 떨어진 꽁초를 주워 들고, 깊게 한 모금 들이켰다.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알림 창의 반 토막 난 메시지 제목을 눌러 왼쪽으로 밀어냈다. 삭제하시겠습니까. 버튼에 ‘예’라고 크게 소리를 냈다.


편지에는 아마도 지난 오만 육천사십 시간 동안, 선미와 마주 앉아 얼마나 많은 꽁초를 버렸는지, 얼마나 많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대신했는지가 쓰여 있었을 것이다. 마흔세 번의 이력서와 생일날 건넨 조화 이야기도. 월세를 빌리던 날의 내 기어들어가던 목소리와, 맞다. 바닥이 닳은 검정 슬리퍼도. 그래, 다. 그래, 뭐. 선미는 다 말하려고 했다. 이래도 네가? 이래도 계속?


하지만 우리에겐 여섯 번의 벚꽃놀이가 있었고, 만취한 밤 코인노래방에서의 첫 키스가 있었고, 이백번은 족히 넘는 섹스가 있었다. 선미의 첫 면접날, 부러진 구두 굽을 손에 쥐게 하고 내 등을 내어 준 적도 있었다. 또, 폐렴에 쓰러진 선미에게 따뜻한 죽을 끓여 준 그 밤도. 그런 것들은, 아마 그 편지에 쓰여 있지 않았겠지. 그래서 그 편지는 지워 마땅했다. 두 번이든 세 번이든, 열 번이라도 더 지울 작정이었다. 나는 꽁초를 발로 짓눌렀다.


딩동. 두 번째 알림음이 울렸다.

[읽지 않음]

오른쪽으로 알림 창을 넘기자, 잘려 나간 글자 조각들이 맞붙었다.


H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보낸 사람, 허선미.


어째서인지 메일은 제대로 지워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잠금화면을 풀고, 파란 바탕화면 위 흰 봉투 모양 아이콘을 눌렀다. 받은 편지함의 맨 윗줄에 굵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읽지 않음]이라 써진 글자 옆 빈 상자를 클릭하고 나는 그것을 영구삭제 했다.


쓰읍. 삭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속에서 끓어오르다 넘쳐 목을 타고 올라오는 기포들을 다시 삼키니 목구멍이 쓰라렸다. 내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바둑판 가장자리의 검은 선을 따라 내려가며, 몇 안 되는 선미의 사진을 찾아냈다. 선미는 여전히 마지막 편지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도 모른다는 듯 웃고 있었다. 삼키지 못한 쓴맛이 나는 침이 입에 가득 고여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진들을 화면 밖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다음날 알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알람을 끄려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알림 창은 어젯밤 그대로였다. [읽지 않음]이라는 알림 메시지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떠지지 않은 눈을 비비며 겨우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열어 메일함으로 들어갔다. 받은 편지함. 보낸 사람 허선미. 번쩍, 눈이 크게 떠졌다가 이마의 근육들에 눌려 내려앉았다. 두통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고 선미의 이름을 그대로 잡아 휴지통으로 보냈다.


영구삭제 하시겠습니까.

네.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알림이 다시 깜빡였다. [읽지 않음] 또다시. [읽지 않음]


네모난 검색창에 물었다. ‘읽지 않음 오류’ 검색창은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스크롤을 내리며 연관검색어를 찾아보아도 ‘지워진 이메일 복구’ 같은, 죄다 도움이 되지 않거나 거슬리는 말뿐이었다.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네 고객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대체 왜 이메일이 지워지지 않는 거죠? 분명히 지웠는데 [읽지 않음] 메시지가 계속 뜬다고요.”

“혹시… 지웠다고 착각하신 것 아닐까요?”

“아니요. 분명히 세 번이나 지웠습니다. 휴지통에 들어가 확인도 했다고요. 영구삭제.”

“고객님. 확인을 해보니, 저희 서버 에러는 없습니다.”

“네? 그럴 리가요.”

“뭐, 그리고 저희도 삭제나 복구 요청을 할 뿐이지 진짜 삭제가 된 건진 알 수가 없습니다. “

뚝.


전화를 끊자마자 알림이 울렸다. 짧고 깊은숨이 턱 끝까지 쫓아왔다.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심장과 폐가 서로 엉겨 붙어, 오그라들었다 펴지는 리듬과 알림의 진동 주기가 구별되지 않았다. 손끝이 세게 떨려와, 나는 그만 휴대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액정은 가뭄처럼 갈라졌다. 선미의 얼굴 한가운데에 상처가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미의 얼굴은 점차 어두워지고 조각난 내 얼굴만이 남았다. 은행 유리에 비치던 윤곽의 그 얼굴을. 나는 멀쩡해 보이는 조각만 골라 붙였다. 오늘을 살아갈 정도로만. 깨진 눈동자의 깊숙한 곳에서 어슴푸레한 무언가가 보였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메일함으로 들어갔다. 떨리는 손가락이 마우스에 올라타 선미의 이름 옆 메일의 제목을 톡 건드렸다. 하얀 화면 속, 마지막이라는 편지가 깃털처럼 펄럭였다.


H야. 언제까지 도망칠 생각이야. 너는 한 번도 내 눈을 본 적이 없어. 내 눈동자에 비친 네 얼굴만 보고 있었지. 내가 사랑했던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공허해. 마치 나가는 길을 잃어버린 네 시 속에, 마침표 없이 쏟아져 내리는 글자들처럼. 읽히지 않을 때만 그곳에 있는.


칼은 애초부터 선미의 손이 아닌, 내 안쪽에 깊숙이 꽂혀 있었다.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선미의 마지막 글자들은 온기를 잃은 시체처럼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몇 번이고 다시 읽었지만 되살아나지 않았다. 나는 입에 문 담배를 재떨이에 꾹 눌렀다. 아니, 재떨이가 아닌 손에 담뱃불이 닿을 때까지 힘을 세게 가했다. 피부에 닿은 붉은 열기가 피를 관통해 온몸을 향해 달렸다. 팔을 기어올라 어깨를 타고 식도로, 그리고 얼굴로.


왈칵. 쏟아진 것은 눈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한 손으로 뜨거운 눈앞을 쓸어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재빨리 찬장 문을 열었다. 손을 뻗어 끌어낸 것은 선미의 눈을 피해 숨겨 두었던 담배 한 보루 반이었다. 남은 힘을 다해 그것을 쓰레기봉투에 내리꽂았다. 검은 봉투의 가장자리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르륵, 주르륵. 바닥은 어느새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젖은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흥건해진 눈물의 웅덩이가 된 흔적을 지워내고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매번 모르는 척하려던 퀴퀴하고 시큼한 냄새에 코를 막았다. 깊숙한 곳에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편의점 도시락과, 차마 버리지 못해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선미의 오래된 반찬통들이 있었다. 숨겨지지 않은 부패의 잔해들을 모두 꺼내어 싱크대의 뜨거운 물로 씻어냈다.


세 봉지나 되는 쓰레기봉투를 들고나가 집 앞 쓰레기통에 버리고 돌아왔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큰 숨을 들이쉬고 메일함을 열었다. 가장 윗 줄에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그 알림이 바뀌어 있었다.


[읽음] H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보낸 사람, 허선미.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른다. 미끄러져 내려간 손가락은 삭제를 지나 답장하기 탭 위에 머물렀다. 클릭.


Re: H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얼굴의 윤곽만이, 모니터의 하얀빛에 반사되어 화면에 떠올랐다. 눈, 코, 입의 자국은 뭉개져 지워진, 그날 은행 유리에서 보이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서서히 익사하는 죽은 물고기의 주둥이처럼 희미하게 깜빡이는 커서는 여전히 나를 조여왔다. 나는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발가락까지 식은땀이 닿았을 때쯤, 멈칫거리던 손가락을 힘겹게 들어 올려 키보드 위에 올렸다.


커서는 쉬지 않고 깜빡였다. 내가 쓰지 않는 동안에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