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Confrontation] 거울 저편 6

중간장. 과거. 시작은 결국 무너지고


중간장

과거

시작은 결국 무너지고



내일부터 나는 새롭게 시작한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성형도 했고, 괜찮은 중견기업 인턴도 붙었다. 채용전환형 인턴이라, 내가 잘하면 이 회사에 취직도 될 거다. 취업한다고 하니 엄마가 보내준 몇십만 원으로 정장도 맞췄다. 성형한다고 할 때 엄마는 반대할 줄 알았는데, 내 선택이라며 날 응원했다.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뜯어 고친다고 하면 반대할 법도 하지만, 마냥 나를 응원해 준 엄마가 너무나도 고맙다. 동생도 날 놀릴 줄 알았음에도 덧나지 말라며 회복에 좋은 비타민도 보내줬다. 나는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게 분명했다. 이제는 가족한테 거짓말도 안 하고 착실하게 살아가리라. 스스로를 위한 가벼운 자축 겸 동네 편의점에서 싸구려 와인 하나를 사서 마신 뒤 잠을 잤다. 내일부터는 내게 행복만 가득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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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다. 새벽 06시. 회사까지 30분 정도 걸리지만, 오늘 첫 출근인 만큼 일찍 가 있기로 했다. 원래였다면 침대에서 5분 정도 뒤척이다가 일어났겠음에도 불구하고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간다. 온몸을 꼼꼼히 씻는다. 과거의 묵은 때들을 씻어내리듯 꼼꼼하게.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다듬는다. 회사에서의 첫인상은 중요하기에, 과하지 않으면서도 단정한 머리를 고수한다. 소중하게 다려둔 정장을 입는다. 인터넷에서 배운 넥타이 매는 법을 따라 목에 넥타이를 두른다. 거울 앞에 서서 옷 매무새를 확인한다. 음. 이 정도면 깔끔하군. 문을 연다. 집 밖으로 나선다. 시원한 새벽 공기가 내 폐포를 어루만진다. 시원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미리 찾아본 버스 차선을 되짚어보며 정류장까지 천천히 걸어간다. 5분 뒤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가면, 대충 8시쯤 도착하겠다. 새벽 아침 버스라 그런지 한산하다. 버스 맨 앞, 기사님 바로 뒤, 살짝 언덕진 의자에 앉아 회사로 향하는 길을 바라본다. 아직은 어색하지만서도 언젠가 익숙해질, 나의 일상이 될 출근길. 사소하지만 이런 것도 내겐 작은 행복이 된다. 부디 나의 직장이 좋은 곳이기를.


“오늘부터 인사2팀과 6개월간 함께할 친구입니다. 모두 잘 대해주세요.”

“안녕하십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인자하신 팀장님께서 내 어깨를 두드리며 모두에게 소개해 주셨다. 내가 일할 부서는 인사2팀. 회사 신규직원 채용 및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가 착하고 선한 모습이었다.


“그러면 잘 부탁해요?”


지금 말을 거는 분은 나의 사수, 김진형 대리님이시다. 김 대리님께서 내게 악수를 청하셨다. 손을 살포시 포개 최대한 예의를 차린다. 그 이후로 대리님과 회사 업무에 대한 인계를 이어갔다. 인사2팀은 총 6명으로, 6개월간 나를 포함해 7명이 일한다. 우리 팀이 생긴 지는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데, 최근 신규입사자의 교육 필요성이 늘어 기존 인사팀으로부터 분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 체계가 안 잡힌 부분도 많다며 나 보고 양해를 부탁한다고 당부하셨다.


“저,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리님.”

“하하! 그래요. 아주 든든하네.”


그날부터 나는 천천히 업무를 익혀갔다. 내부 인트라망에서 메일 보내는 법, 전화 돌리는 법, 결재 서류나 문서 제작하는 양식 등 기본적인 업무부터, 인사2팀만의 교육자료 등 고유한 업무도 알려주셨다. 내가 다니던 학과에서 배운 게 이런 거라 가뿐히 적응할 수 있었다. 대학 다닐 때는 이런 걸 왜 배우나, 알바랑 과제를 함께하느라 너무 힘들었는데 진짜 회사에서 써먹으니 대학 다니길 다행이다 싶었다.

중간중간 정규직 전환을 위한 분기 평가, 실무 평가 등도 있었다. 김 대리님과 인사2팀 선배님 덕분에 차근차근 해결해 나갈 수 있었고, 모두가 내 정규직 전환을 예상하는 분위기였다.


어느 날은 인사1팀의 업무를 내가 담당했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건 회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청렴 교육이었다. 신입사원에게 시켜도 버거울 법한 일을, 인턴에게 시키는 게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음에도 나는 노력했다. 마치 이게 마지막 관문인 것 같아서. 이것만 해내리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만 일개 교육이라 치부할 수 있는 일임에도 되게 큰 규모였다. 사원 전원이 대상이며, 여타 교육이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것과 달리 현장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인사2팀은 물론 인사팀 전체 업무로 봐서도 제일 큰 교육이었다.

“잘할 수 있지?”

“그럼요. 대리님. 제가 끝장나게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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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청렴교육날. 부장단부터 사원까지. 적어도 회사의 임원진을 제외한 모두가 찾아왔다. 회사 강당이 가득 찰 정도였으니 말은 다했다.


“지금부터 21년도 프롬미바이오 청렴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한참 교육을 진행하다가 사장님도 들어오셨다. 그런데 사장님만 오신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뒤로 기자 몇 분도 따라 들어왔다. 나중에 들어 보니 우리 회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기자들을 부른 것이었다. 그래도 긴장하지 않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준비한 대로 교육을 이어갔다. 때로는 진지하게, 가끔은 사람들의 웃음을 불러오며,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청렴교육을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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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진짜 너무 잘하더라. 오늘의 주인공을 위해 박수!”

교육이 끝나고 부서 회식. 팀장님께서 내 등을 두드려주시며 격려했다. 끝나고 사장님도 흡족한 모습으로 박수를 쳐주셨고, 방금 확인한 기사를 확인해 보니 기자들의 반응도 볼 만했다.

“오늘 주인공이 건배사 한 번 할까?”


행복했다. 팀원분들이 따라주시는 술잔을 받으며 나도 여기에 소속되었음을 느낀다. 그날은 좀 취하고 싶은 날이었나보다.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마시며 오늘의 기분을 즐겼다. 이대로만 가면 이 회사에 붙는 건 당연지순이라며 김 대리님마저 앞으로 쭉 잘 부탁한다며 술을 따라주셨다. 그동안의 거짓말, 스스로를 향한 죄책감 등이 이 술 한 잔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나도 자랑스러운 인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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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행복은 허락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행복이라는 놈이 내가 싫어서 도망다니는 걸까. 마치 미끼를 던진 낚시꾼처럼 왜 매번 조금의 행복을 준 뒤에는 쓰디쓴 불행을 던져주는 것일까.


정사원 전환에 실패했다. 출근하고 들어간 사무실에 분위기가 무언가 침체돼 보이더니만, 내 인사 결과를 먼저 확인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쉽사리 위로하지 못하는 분위기. 나를 동정하는 듯한 표정들. 익숙하다. 이런 기분은. 분명 인사고과도 나쁘지 않았고, 심지어 그렇게 큰 교육까지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정사원에 떨어진 지는 팀원 그 누구도 몰랐다.

“괜찮아..?”

“네. 제가 모자랐나 봐요. 그럴 수 있죠.”


겉으로 티 내지는 못했지만, 당연히 심장이 저렸다. 누군가는 인턴 한 번 떨어진 거는 수도 없이 겪는 일이라고 반문할 수 있는 걸 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가 다소 아쉽게 되돌아온 게 마음 아팠다. 그래도 스스로를 위로한다. 괜찮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니까. 나는 이거보다 더한 일들을 겪어왔다. 3보 전진을 위한 잠깐의 멈춤임을 되새겼다.


옆 부서의 다른 인턴은 정사원 전환에 붙었다는 사실을 듣고도 나는 괜찮았다. 아니, 괜찮아야 했다. 엄연히 여기는 회사다. 내 일로 다른 이들에게 감정을 끼치면 안 된다.

그날 오후, 부장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이번 일은 정말 안타깝지만 6개월만 함께 더 일해보자는 권유였다. 다음번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도 당부하셨다. 그렇게 난 6개월 더 인사2팀에 머물렀다. 달라진 건 없다. 원래 앉던 자리, 원래 하던 일, 원래 함께하던 사람들. 단지 내가 지금 정사원이 아니고 인턴이라는 사실만이 원래의 예상보다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6개월에 희망을 걸어본다. 분명 부장님께서 6개월 뒤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말하셨기에, 거기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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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전환 채용 심사 결과, 귀하께서는 명단에 없습니다.]

다시 한번 쓰라린 배신을 느끼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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