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Confrontation] 거울 저편 6
중간장. 과거. 시작은 결국 무너지고
by 나는 달을 건너는 중입니다 Feb 25. 2026
중간장
과거
시작은 결국 무너지고
내일부터 나는 새롭게 시작한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성형도 했고, 괜찮은 중견기업 인턴도 붙었다. 채용전환형 인턴이라, 내가 잘하면 이 회사에 취직도 될 거다. 취업한다고 하니 엄마가 보내준 몇십만 원으로 정장도 맞췄다. 성형한다고 할 때 엄마는 반대할 줄 알았는데, 내 선택이라며 날 응원했다.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뜯어 고친다고 하면 반대할 법도 하지만, 마냥 나를 응원해 준 엄마가 너무나도 고맙다. 동생도 날 놀릴 줄 알았음에도 덧나지 말라며 회복에 좋은 비타민도 보내줬다. 나는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게 분명했다. 이제는 가족한테 거짓말도 안 하고 착실하게 살아가리라. 스스로를 위한 가벼운 자축 겸 동네 편의점에서 싸구려 와인 하나를 사서 마신 뒤 잠을 잤다. 내일부터는 내게 행복만 가득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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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다. 새벽 06시. 회사까지 30분 정도 걸리지만, 오늘 첫 출근인 만큼 일찍 가 있기로 했다. 원래였다면 침대에서 5분 정도 뒤척이다가 일어났겠음에도 불구하고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간다. 온몸을 꼼꼼히 씻는다. 과거의 묵은 때들을 씻어내리듯 꼼꼼하게.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다듬는다. 회사에서의 첫인상은 중요하기에, 과하지 않으면서도 단정한 머리를 고수한다. 소중하게 다려둔 정장을 입는다. 인터넷에서 배운 넥타이 매는 법을 따라 목에 넥타이를 두른다. 거울 앞에 서서 옷 매무새를 확인한다. 음. 이 정도면 깔끔하군. 문을 연다. 집 밖으로 나선다. 시원한 새벽 공기가 내 폐포를 어루만진다. 시원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미리 찾아본 버스 차선을 되짚어보며 정류장까지 천천히 걸어간다. 5분 뒤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가면, 대충 8시쯤 도착하겠다. 새벽 아침 버스라 그런지 한산하다. 버스 맨 앞, 기사님 바로 뒤, 살짝 언덕진 의자에 앉아 회사로 향하는 길을 바라본다. 아직은 어색하지만서도 언젠가 익숙해질, 나의 일상이 될 출근길. 사소하지만 이런 것도 내겐 작은 행복이 된다. 부디 나의 직장이 좋은 곳이기를.
“오늘부터 인사2팀과 6개월간 함께할 친구입니다. 모두 잘 대해주세요.”
“안녕하십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인자하신 팀장님께서 내 어깨를 두드리며 모두에게 소개해 주셨다. 내가 일할 부서는 인사2팀. 회사 신규직원 채용 및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가 착하고 선한 모습이었다.
“그러면 잘 부탁해요?”
지금 말을 거는 분은 나의 사수, 김진형 대리님이시다. 김 대리님께서 내게 악수를 청하셨다. 손을 살포시 포개 최대한 예의를 차린다. 그 이후로 대리님과 회사 업무에 대한 인계를 이어갔다. 인사2팀은 총 6명으로, 6개월간 나를 포함해 7명이 일한다. 우리 팀이 생긴 지는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데, 최근 신규입사자의 교육 필요성이 늘어 기존 인사팀으로부터 분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 체계가 안 잡힌 부분도 많다며 나 보고 양해를 부탁한다고 당부하셨다.
“저,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리님.”
“하하! 그래요. 아주 든든하네.”
그날부터 나는 천천히 업무를 익혀갔다. 내부 인트라망에서 메일 보내는 법, 전화 돌리는 법, 결재 서류나 문서 제작하는 양식 등 기본적인 업무부터, 인사2팀만의 교육자료 등 고유한 업무도 알려주셨다. 내가 다니던 학과에서 배운 게 이런 거라 가뿐히 적응할 수 있었다. 대학 다닐 때는 이런 걸 왜 배우나, 알바랑 과제를 함께하느라 너무 힘들었는데 진짜 회사에서 써먹으니 대학 다니길 다행이다 싶었다.
중간중간 정규직 전환을 위한 분기 평가, 실무 평가 등도 있었다. 김 대리님과 인사2팀 선배님 덕분에 차근차근 해결해 나갈 수 있었고, 모두가 내 정규직 전환을 예상하는 분위기였다.
어느 날은 인사1팀의 업무를 내가 담당했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건 회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청렴 교육이었다. 신입사원에게 시켜도 버거울 법한 일을, 인턴에게 시키는 게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음에도 나는 노력했다. 마치 이게 마지막 관문인 것 같아서. 이것만 해내리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만 일개 교육이라 치부할 수 있는 일임에도 되게 큰 규모였다. 사원 전원이 대상이며, 여타 교육이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것과 달리 현장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인사2팀은 물론 인사팀 전체 업무로 봐서도 제일 큰 교육이었다.
“잘할 수 있지?”
“그럼요. 대리님. 제가 끝장나게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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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청렴교육날. 부장단부터 사원까지. 적어도 회사의 임원진을 제외한 모두가 찾아왔다. 회사 강당이 가득 찰 정도였으니 말은 다했다.
“지금부터 21년도 프롬미바이오 청렴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한참 교육을 진행하다가 사장님도 들어오셨다. 그런데 사장님만 오신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뒤로 기자 몇 분도 따라 들어왔다. 나중에 들어 보니 우리 회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기자들을 부른 것이었다. 그래도 긴장하지 않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준비한 대로 교육을 이어갔다. 때로는 진지하게, 가끔은 사람들의 웃음을 불러오며,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청렴교육을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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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진짜 너무 잘하더라. 오늘의 주인공을 위해 박수!”
교육이 끝나고 부서 회식. 팀장님께서 내 등을 두드려주시며 격려했다. 끝나고 사장님도 흡족한 모습으로 박수를 쳐주셨고, 방금 확인한 기사를 확인해 보니 기자들의 반응도 볼 만했다.
“오늘 주인공이 건배사 한 번 할까?”
행복했다. 팀원분들이 따라주시는 술잔을 받으며 나도 여기에 소속되었음을 느낀다. 그날은 좀 취하고 싶은 날이었나보다.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마시며 오늘의 기분을 즐겼다. 이대로만 가면 이 회사에 붙는 건 당연지순이라며 김 대리님마저 앞으로 쭉 잘 부탁한다며 술을 따라주셨다. 그동안의 거짓말, 스스로를 향한 죄책감 등이 이 술 한 잔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나도 자랑스러운 인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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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행복은 허락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행복이라는 놈이 내가 싫어서 도망다니는 걸까. 마치 미끼를 던진 낚시꾼처럼 왜 매번 조금의 행복을 준 뒤에는 쓰디쓴 불행을 던져주는 것일까.
정사원 전환에 실패했다. 출근하고 들어간 사무실에 분위기가 무언가 침체돼 보이더니만, 내 인사 결과를 먼저 확인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쉽사리 위로하지 못하는 분위기. 나를 동정하는 듯한 표정들. 익숙하다. 이런 기분은. 분명 인사고과도 나쁘지 않았고, 심지어 그렇게 큰 교육까지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정사원에 떨어진 지는 팀원 그 누구도 몰랐다.
“괜찮아..?”
“네. 제가 모자랐나 봐요. 그럴 수 있죠.”
겉으로 티 내지는 못했지만, 당연히 심장이 저렸다. 누군가는 인턴 한 번 떨어진 거는 수도 없이 겪는 일이라고 반문할 수 있는 걸 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가 다소 아쉽게 되돌아온 게 마음 아팠다. 그래도 스스로를 위로한다. 괜찮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니까. 나는 이거보다 더한 일들을 겪어왔다. 3보 전진을 위한 잠깐의 멈춤임을 되새겼다.
옆 부서의 다른 인턴은 정사원 전환에 붙었다는 사실을 듣고도 나는 괜찮았다. 아니, 괜찮아야 했다. 엄연히 여기는 회사다. 내 일로 다른 이들에게 감정을 끼치면 안 된다.
그날 오후, 부장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이번 일은 정말 안타깝지만 6개월만 함께 더 일해보자는 권유였다. 다음번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도 당부하셨다. 그렇게 난 6개월 더 인사2팀에 머물렀다. 달라진 건 없다. 원래 앉던 자리, 원래 하던 일, 원래 함께하던 사람들. 단지 내가 지금 정사원이 아니고 인턴이라는 사실만이 원래의 예상보다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6개월에 희망을 걸어본다. 분명 부장님께서 6개월 뒤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말하셨기에, 거기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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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전환 채용 심사 결과, 귀하께서는 명단에 없습니다.]
다시 한번 쓰라린 배신을 느끼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