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Confrontation] 거울 저편 8
중간장. 거울 속. 이원화
by 나는 달을 건너는 중입니다 Feb 27. 2026
중간장
거울 속
이원화
나는 거울 속에서만 너를 바라볼 수 있었다. 종량제봉투를 덮고 자던 모습, 휴대전화가 어디 있는지 한참을 찾던 모습, 일기장에 스스로를 기록하며 괴로워하던 모습까지. 서서히 무너져 내려가는 널 보며, 언제쯤 거울을 봐줄지 초조했다. 거울을 한 번만 봐주면 되는데도, 끝까지 너는 날 봐주지 않았다.
목에 줄을 두르고 발을 떼던 너를 보며, 이제 다 끝났음을 직감했다. 평생을 거울 속에 갇혀 살겠구나. 그때 엄마로부터 온 전화 벨소리에, 네가 거세게 발버둥 치다가 툭 떨어진 뒤, 나는 다소 안심했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님을 알고선, 돌아온 신은 내 편임이었나 고민한다.
원래였다면 내가 아무리 외쳐도 듣지 못했겠지만, 죽음의 문턱으로 가까워지며 네 마음의 벽이 다소 얇아진 이 순간이라면, 내 목소리가 닿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말해야 네가 환청이라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일까. 그래, 네 최대의 관심사인, ‘병’에 대해 말해주자.
- 과연 그럴까?
네 어깨가 들썩인다. 다행히도 이제는 내 목소리가 들리나 보다.
- 환청이 아니야. 난 너를 낫게 만들 수 있어.
두리번 두리번 소리의 정체를 확인한다. 그러고서는 방 안으로 천천히 들어온다. 그리고 드디어 나를 봐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울을 봤다.
- 그래. 환청 아니라니까.
- 드디어 봐주네. 안녕.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 매우 당황한 모습. 지금의 당황은 사라지고, 점차 너는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거다. 왜냐하면 나만이 널 ‘낫게’ 해줄 수 있으니까.
“넌 누구야..?”
내가 누구냐는 말에 뭐라 답할까. 답은 미루고, 우선 네가 나를 바라보게 만들자.
- 제대로 한 번 봐봐.
-
과도하게 목소리를 내서 그런가, 한동안 거울에 모습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거울에 보이지 않아도, 네가 거울을 들고 있는 이상 나는 네 주위에 있을 수 있다. 그날부터 너는 자신의 ‘광증’이 사라졌다며 새로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갔다. 회사 사람들의 걱정 가운데에서, 너는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누렸다.
부모님도 만나 뵀다. 엄마와 동생, 그리고 네 사이에서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니,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날 이후로 너와 감정은 연결되어 있었기에, 너는 이 순간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질투를 느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 나는 달이 풍만해질 때만 나올 수 있었다. 태양빛을 훔치는 달의 여신이 밤하늘의 주인이 되는 시간. 마치 내 모습이 달과 같음을 증명하는 이때야말로, 거울 속에 드러날 수 있다. 네가 거울을 들자마자 나는 너를 직시했다.
- 안녕? 기다렸어?
나야 뭐 하루 종일 네 곁에 있었다지만, 너는 나를 보는 게 근 한 달만이라 그런가 반가움 반 당황 반이었던 거 같다.
“기다렸어. 오늘만을.”
기다림은 길었고, 묻고 싶은 말도 많았겠지. 나 같아도 궁금한 게 진짜 많았을 거다. 누가 믿겠는가. 세상만물이 고장난 AI처럼 이상하게 나타나고, 거울 속에는 귀신 같은 내가 나타난다는 걸, 누가 믿겠어. 그래. 궁금한 게 많을텐데, 다 물어봐.
“…너는 뭐야? 아니, 정확히 말해서 정체가 뭐야?”
정체. 당연히 이걸 먼저 물어보리라 예측했건만 좋은 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나는 거짓말은 못한다. 그게 이 거울의 목적이자 한계기 때문이다. 거울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세상을 비추고, 오로지 투영과 반사를 목적으로 하는 유일한 물건인, 거울.
능청스레 답변을 미루려고 했으나 당연히 더욱 더 캐물을 게 뻔하다. 그래서 아마 그냥 진실을 말해줬던 거 같다. 그걸 믿는 건 너의 몫이겠지만서도.
-
그런데 이상하다. 날이 갈수록 네가 나에게 가지는 감정이 점차 깊어지는 것 같았다. 예상 외였다. 분명 친해져야 하는 건 맞음에도, 네가 나를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아이러니다. 다시는 스스로 사랑하지 못한다고 다짐했던 ‘너’인데 ‘나’를 보며 사랑을 느끼다니.
네가 나가자는 산책, 영화, 뭐, 네가 데이트라고 부르는 것들. 하자는 대로 다 해줬다. 네가 원하는 대로 감정 표현도 다 해줬다. 서서히 내게 더 가까워지도록. 거울 안에서 손만 뻗으면 네가 닿을 정도로 내게 더 다가오는 그 순간을 고대했다.
그런데 무언가 가슴이 아프다. 얼마나 벼랑 끝으로 밀렸으면, 실체가 없는 거울에게 마음을 넘겨주는 걸까. 그래도 현실을 직시하자. 나는 너한테 연민과 동정을 느껴서는 안 된다. 그건 내가 제일 싫어했던 감정이면서도, 네가 무너져 내릴 때마다 너를 둘러싸던 것이기에. 그래, 동정보다는 다른 감정을 느껴야 한다.
“나 이제 너 없으면 못 살 거 같아.”
네가 고백하던 그날. 나는 기뻤다. 이제 네 몸은 곧 나에게 온다는 사실에. 예상보다 더욱 순탄하게 일이 흘러가는구나. 고맙다. 덕분에 내가 거울 밖으로 나설 순간이 점점 더 다가오고 있어. 너도 내게 몸을 바치게 된다면 기뻐할 거야.
그래. 나는 내 기쁨보다, 너를 위해 이 짓을 한 거야. 그래. 그런 거야. 그래야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