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ken Beauty] 빛에 머문 시선

보이는 것과 믿는 것 사이

by 서수정



어느 날, 한 여자가 어떤 거울 앞에 섰다.
그곳의 빛은 유난히 부드러웠고, 선은 자연스럽게 정리되어 있었다.
거울 속의 그녀는 생각보다 가볍고, 조금 더 길어 보였다.
그녀는 잠시 자신을 바라보다가 별다른 이유 없이 마음이 놓였다.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구나.’
그날 그녀는 천천히 공간을 걸었다.
유리 진열장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고, 이미 익숙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무언가를 고르는 일은 충동이라기보다
이미 확인된 자신을 따라가는 과정 같았다.
그녀는 새로워지기보다 이미 괜찮아 보였던 자신을 완성하고 있다고 믿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집에 거울 하나를 들였다.
그 거울은 특별한 연출이 없었고,
빛을 더하지도 덜어내지도 않았다.
그 앞에 섰을 때 그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거울 속에는 그동안 알고 지내던 얼굴이 서 있었다.
꾸며지지 않았고, 설명도 없었다.
그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익숙하고, 조금은 불편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은 언제나 ‘나’라기보다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어떤 장면이었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크지 않았지만
조용히 마음의 결을 바꾸어 놓았다.
아름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름다움에 기대어 있던 확신이
조금 느슨해졌을 뿐이었다.


◇ ◇ ◇ ◇ ◇ ◇ ◇ ◇ ◇ ◇

이 이야기는 누군가가 지어낸 우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이미 여러 번 마주쳐온 장면일지도 모른다.
조명이 유난히 좋았던 어느 공간에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던 순간에서,
몸이 가볍게 느껴졌던 짧은 착각 속에서.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것을 사실이라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보이는 방향으로 마음이 먼저 움직였을 뿐이다.
한 번 형성된 인식은 그 이후의 판단을 조용히 이끌어간다.
잘 어울려 보이는 것만 눈에 들어오고, 불편한 감각은 자연스럽게 밀려난다.
밀려난 자리에는 대개 우리가 오래 미뤄 두었던 얼굴이 남는다.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이 사실을 판단할 때조차 이미 마음속에 만들어 둔 생각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보고 싶은 장면을 사실처럼 받아들인다.
그 믿음은 조용하고 단단해서 때로는 진실보다 더 오래 머문다.
그래서 어떤 공간에서는 괜히 자신감이 생기고,
어떤 장소에서는 별다른 이유 없이 작아진다.
사람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조건이 달라졌을 뿐인데도 말이다.
집에 있는 거울 앞에서 괜히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 거울은 우리를 설득하지도, 확신을 보태주지도 않는다.
그저 그대로 서 있을 뿐이다.
그 앞에서는 보고 싶은 모습만 골라 보기가 어렵다.
어쩌면 우리가 불편해하는 것은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확신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드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설명 없이 서 있어야 하는 시간,
평가도 연출도 없이 존재로만 남는 순간.
그 시간은 짧지만 묵직하다.
그곳에서는 비교가 잠시 멈추고,
“괜찮아 보이던 나” 대신 그저 살아 있는 나만이 남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가의 문제다.
공간은 현실을 바꾸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을 조용히 흔들어 놓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더 괜찮아 보이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기억이 현재를 대신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보이는 것과 믿는 것 사이의 거리를 천천히 다시 재어 보아야 한다.
어쩌면 아름다움은 완벽하게 정돈된 선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확신이 조금씩 풀려난 자리에서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빛이 줄어든 뒤에도 그 자리에 여전히 서 있는 얼굴.

설명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


가끔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