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Confrontation] 거울 저편 完
최종장. 거울 너머
by 나는 달을 건너는 중입니다 Mar 1. 2026
최종장
거울 너머
나는 너다. 아니다. 이제 나는 드디어 ‘나’가 되었다. 드디어. 오랜만에 느끼는 바깥공기. 거울 속에서는 느낄 수 없던 생생함. 이것이야말로 내게는 찬란한 순간이다. 너는 알까. 내가 이 순간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지금쯤은 알려나. 네가 나한테 속았다는 것을.
거울은 거짓말을 못 한다. 그렇기에 거울 속에 있는 나도 거짓말을 못 했다. 네가 내 정체를 물었을 때, 나는 너라고 답했었다. 거짓이 아니다. 진실이다. 나는 진짜 너이기 때문이다.
네가 겪은 착각증, 광증, 자살시도.. 나도 이미 다 겪은 일이다. 단지 자살시도로 진짜 죽어버렸을 뿐이다. 너는 엄마의 전화를 듣고 줄이 끊어졌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의 벨소리를 들으며, 그 줄은 서서히 내 숨을 앗아갔다. 눈을 뜨니, 나는 거울 안이었다. 난 거울 안에서, 차디차게 죽어가는 내 시체를 바라봤다. 그때의 나는 기뻤다. 거울 속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사물들이 제대로 보였으니 말이다. 우리의 광증이 죽음으로서 해결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제대로 볼 수 있었음에도 앞으로의 미래를 옆에서 지켜볼 줄은 몰랐다. 맞다. 이 거울 안에서 내가 죽고 난 뒤의 모든 걸 지켜봐야 했다.
내가 죽고 며칠이 지난 시점이었다. 내 걱정에 집으로 찾아온 엄마는 자식의 시체를 목도했다. 사람이 그렇게 처절하게 울 수 있음을, 이제서야 알았다. 삶의 모든 기력을 우는 것에 사용한다면 저런 광경이 아닐까 싶었다. 3일 뒤, 상복을 입고서 내 집을 치우러 온 엄마와 동생을 보자, 나는 후회로 가득 찼다.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내 집을 찾아왔다. 시도때도 없이 방바닥을 쓸고, 닦고, 눈물을 훔쳤다. 날이 갈수록 엄마의 온몸은 말라갔다. 눈물샘은 아직도 생생하게 눈물을 토해내고 있었지만, 그 반대로 엄마는 뼈밖에 남지 않았다. 거울 한 겹은 정말 얇았음에도 엄마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손만 뻗으면 엄마를 위로해 줄 수 있을 텐데. 스스로가 너무 무기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모든 걸 포기한 듯 멍한 눈으로 집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혼잣말로 어떤 말을 뱉어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러지 말걸..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냥 다 알고 있다고 말해줄걸…”
엄만 바닥을 치며 털썩 쓰러진다. 그 모습이 정말 위태로워 보였기에, 나는 반사적으로 거울 밖으로 내달렸다. 그때였다. 바깥 세상을 비추는 면이 두 겹으로 나눠지며, 과거의 내가 비춘다.
“나야 너무 잘 지내지! 나 요즘 너무 행복해. 대학교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고, 성적도 잘 받고. 물론 해외라서 엄마 김치찌개가 그립기는 한데,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재미는 있어.”
대학 학비를 위해 하루에 몇탕씩 알바를 뛰던 때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활용해 엄마와 전화하던 때였던 거 같다. 지금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던 도중이었다. 휴대폰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재미 있다니 다행이네. 밥 잘 챙겨 먹고~”
“알겠어. 밥 잘 챙겨 먹을 테니까, 엄마도 걱정하지 마.”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도 몰랐다. 엄마가 편의점 문 앞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거울 속에서 지금에야 알았다. 엄만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힘든 건 없고? 힘들면 그냥 집으로 내려와야 해.”
마치 울음을 참는 듯한 목소리. 그때의 나는 너무 바빴기에 알아차리지 못한 떨림. 그러나 제3자로 바라보니 이제야 알겠다. 엄만 지금 사무치게 괴로워하고 있음을.
“알겠다고~ 힘든 거 있으면 다 말할게.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그치.. 거짓말 절대 안 하지. 우리 강아지. 엄마가 사랑한다.”
“나도 사랑해.”
뚝— 수화기 너머로 전화가 끊어졌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편의점 안에서 손님의 담배를 계산하고 있었고, 엄마는 유리문 밖에서 눈물을 참고 있었다. 내게 다가오지는 않으셨다. 마치 자식의 진실을 숨겨주려는 듯, 뒤로 돌아 어딘가로 걸어가신다.
- 엄마가 다 알고 있었다고…?
몇 년을 거짓에 부친 순간들. 그러나 그게 나의 거짓말로 유지되었던 게 아닌 엄마의 눈물로 가려지고 있음을 안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무너졌다. 그러고 보니 저 전화를 기점으로, 더 이상 엄마가 찾아오겠다고 말하지 않았었다. 모든 아다리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주저 앉는다. 다시 거울의 면이 나눠지며, 다른 곳으로 날 데려왔다.
“시발! 너를 보면 기분은 좋은데,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 잘생기지도 예쁘지도 않았고, 몸은 완전 노인네 같아. 축 늘어져서는. 그래도 나도 사람인데, 욕구는 풀고 살아야 할 거 아니야. 그래서 그런 거야. 나는 널 사랑하는데, 어쩔 수 없이…”
내게 있어 인생 최악의 순간. 가족보다 더 가족 같던, 내가 유일하게 내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던 그 녀석이 쓰라리게 나를 배반한 그때였다.
“너.. 그걸 말이라고…”
“미안해. 이렇게 할 말은 아니었는데.”
그 자리에, 나만 혼자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골목 옆에는 엄마가 서 있었다. 자식이 좋아하는 반찬을 으랴부랴 한 손에 든 채로. 반 나체의 사람과 자식이 소리치는 그 순간을 직시하고 있었다.
내리는 비가 내 눈물인지, 아니면 그냥 비인지 모를 정도로 슬퍼하고 있던 그날. 엄마는 나를 천천히 따라왔다. 내가 내던진 반지들을 줍고, 지금이라도 옆에 가 나를 위로해 줄지 고민하던 감정들이 내게 다 느껴졌다. 거울 속에서야 나는 엄마의 표정을 본다. 그 표정은 형용할 수 없었다.
다시 거울은 면을 갈라, 또 다른 장면을 내 눈앞에 펼쳤다.
회사 정규직 전환에 떨어진 날이었다. 그날의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은 손이 떨렸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물 아래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땐 아직 광증이 ‘병’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이었다. 그냥 내가 약한 줄만 알았다. 그냥 내가 못난 줄만 알았다.
오늘만큼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고속버스를 끊고 본가로 내려왔다. 내가 대학에 올라가 돈을 벌고 나서부턴 우리 집은 다행히도 2년마다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됐다. 내 식비와 교육비는 내가 충당했기에, 좀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열었다. 신발을 벗는 것조차 힘들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안 먹고 싶고,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자식이 1년에 2번 와도 자주 오는 편이건만, 이 방은 언제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듯.
문을 닫았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한참을 누워 오지도 않는 잠을 기다리며 뜬 눈으로 지새우던 그때였다. 밖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났다.
사각— 사각—
엄마가 뭔가를 들고 왔다. 그러나 엄마는 말이 없었다. 말이 없는 대신,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내쉬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나는 벽을 보고 누워 있었다. 엄마가 문을 두드릴까 봐 무서웠다. 두드리면, 나는 괜찮다고 거짓말을 해야 한다. 엄마는 한참을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이 들렸다 내려가는 그림자가 바닥에 비쳤다. 문고리를 잡으려다 멈추고, 다시 잡으려다 멈추는 그림자.
“밥… 먹었어?”
엄마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위로하려는 말이 아닌 그냥 살아있냐고 묻는 말이었다. 자식이 아직 남아있냐고 확인하는 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순간,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울음이 터지는 순간, 엄마는 그걸 감당해야 해서. 문밖에서 또 소리가 났다. 접시가 조심스럽게 바닥에 놓이는 소리였다.
“여기… 사과 깎아놨어. 네가 좋아하잖아.”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문고리를 잡지 못한 채로, 방 앞에서 망설이며, 한참을 서 있었다. 그 망설임이 가장 잔인했다. 엄마는 나를 위로할 방법을 몰랐고, 나는 엄마를 받아낼 힘이 없었다. 우리는 늘 그랬다.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서로에게 다가가는 법을 몰랐다.
결국 엄마는 돌아섰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그때도 몰랐다. 엄마가 문밖에서 눈물을 훔쳤다는 걸. 엄마가 ‘들어가야 하나’와 ‘들어가면 안 된다’ 사이에서 스스로를 찢고 있었다는 걸, 거울 속에서야 알았다. 사람은, 알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을 제일 늦게 알게 된다.
엄마는 내 모든 거짓말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식을 위해 아는 체하지 않았다. 자식이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숨기게 만들었을 당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워서. 그 은닉과 원망은 지금까지 이어져, 우리 엄마를 좀먹고 있었다.
거울은 다시 제자리, 한 면으로 돌아와, 엄마 앞으로 나를 데려왔다.
“이제라도 안아주러 가야지..”
엄마가 가방에서 약통 하나를 꺼낸다. 안돼. 이렇게 엄마를 보낼 순 없어. 모든 게 다 내 잘못인데, 엄마는 아무 잘못 없잖아. 하지만 거울은 내게 개입을 허락치 않았다. 거울은 진실을 보여주되, 진실을 고칠 손은 주지 않는다. 마치 세상이 나에게 내린 형벌처럼.
엄마가 알약을 입에 가지고 갈수록, 나는 죽음의 그 순간보다 더 괴로운 통증을 느낀다. 엄마가 알약을 삼키기 직전. 거울 밖 세계가 멈춘다. 그리고 방 밖의 창문 사이로 달빛이 내려온다.
- 아이야. 이제야 진실을 회피하려 한 네 자신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알겠니.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지금 들리는 목소리가 나를 거울 속에 갇히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을. 달. 이 세계의 광대. 태양빛을 훔쳐 밤을 연명하는 존재. 그 달이 내게 말을 건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 자살이요? 그렇다면 왜 저한테 이상한 시련을 내려주신 건가요? 저도 죽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세상 모든 게 이상하게 보이는데 어떡하라고요.”
- 네 잘못은 그게 아니야.
달의 목소리는 차갑지 않았다. 차갑다기보단, 너무나도 단정했다. 단정해서 무섭다.
- 너는 언제나 너로부터 도망쳤지.
“…무슨 소리예요.”
거짓말로 엄마를 안심시키고, 거짓말로 너를 살리고, 거짓말로 너를 죽였지.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 그런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너 자신을 버리는 걸 정당화하지 마.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광증은 벌이 아니었다. 병도 아니었다. 광증은,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한 대가였다. 나 자신을 인정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생각을 바라보겠는가. 모든 객체는 주체로부터 비롯되는 법. 인생에서 주체인 나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기에 내려진 스스로의 병이었다.
- 너는 너를 보지 않았어.
- 너를 봐야 할 때마다, 너 말고 다른 것이 되려 했지.
- 그래서 나는 네 눈을 부숴버렸어.
- 세상이 뒤틀려 보이게 해서라도, 너 스스로를 보게 만들려고.
달은 언제나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달은 언제나 달이었다. 중요한 건 왜인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 그럼에도 너는 끝까지 너를 보지 않았지.
- 그래서 너는 거울 속으로 들어간 거다.
- 거울은 진실만 비추는 물건이니까.
- 너는 진실을 피해 왔으니, 진실 속에 갇히는 게 너의 형벌이야.
나는 숨을 삼켰다. 맞는 말이다. 너무 맞아서 아프다. 나는 늘 나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더 예쁜 얼굴이 되면, 더 나은 직장이 생기면, 더 큰 성공을 하면, 그때는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나는 늘 다음의 나를 사랑했고, 현재의 나는 혐오했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계속 죽었다. 현재의 진실과 나를 외면하는 것. 그게 ‘광증’이었다.
“…그럼 엄마는요.”
- 엄마는 네가 남긴 공백을 평생 껴안고 살겠지. 아니지. 이젠 죽어서 사라지려나?
“…그럴 순 없어요. 엄마는 아무 잘못 없다고요.”
- 그래서 기회를 주마.
달은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그러나 신이 베푸는 구원은 늘 이기적이다. 조건이 붙는다.
- 과거로 돌아가라.
- 거울 속에 들어가, 과거의 너를 설득해라.
- 또는 너 자신을 직시하게 만들어라.
- 선택은 네가 해.
- 그리고 그 책임도 네가 감당해.
달빛이 더 짙어졌다. 마치 내 입을 막는 것처럼, 더 이상 질문이 나오지 않게.
나는 다시 거울을 본다. 멈춰버린 엄마의 손. 약통. 입술. 그 모든 것들. 그리고 거울 속의 나. 그때서야, 나는 힘든 일이 올 때마다 나 자신으로부터 회피했는지 깨닫는다. 혼자서는 나를 감당할 수 없어서. 나를 보는 건 너무 아파서. 내 인생은 결국 도망으로 귀결됐다. 그러나 달이 말한 건, 도망의 끝이다. 도망치지 말고, 직시하라고. 나를 내가 껴안으라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진실을 모르는 나는 이 삶을 지탱할 힘이 없을 거다. 언제든 광증이 도지면 다시 삶을 포기하게 되겠지.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자식을 잃은 고통을 겪게 될 거야. 그럴 순 없어. 모든 진실을 아는, 모든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 나야말로 거울 속의 타자가 아닌 너의 주체가 되어야 해.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내가 다시 나를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 몸을 가져야 한다. 이기적인 결론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건, 살아남는 일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까. 거울 속의 나는 웃었다. 그 웃음이 나에게는 처음으로 ‘나답게’ 느껴졌다.
- 그래. 이번에는 내가 나로 살아가야지.
-
거울 밖으로 나서는 과정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폭발도, 빛도, 드라마틱한 음악도 없었다. 단지 거울 표면이 아주 얇은 막처럼 느슨해졌고, 나는 한 발을 내딛었다.
발바닥에 차가운 바닥이 닿았다. 바닥은 바닥이었다. 공기는 공기였다. 그리고 나는… 살아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살아 있음의 감각. 다시 되돌아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거울 속으로 들어온 뒤 처음으로 나는 밥을 먹었다. 배고파서, 맛을 느끼고 싶어서, 그런 여타의 이유가 아닌, 단지 먹어야 하니까 먹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계산하던 손도, 고깃집에서 냄새를 견디던 코도, 회사에서 서류를 넘기던 손목도, 모두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이어서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는 엄마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이렇게 어렵고, 동시에 이렇게 쉬운 건지, 처음 알았다.
“엄마. 나… 지금 내려갈게.”
“…그래. 그래, 우리 강아지.”
-
세상은 여전히 힘들었다. 돈 버느라 아르바이트에 전전하는 학생들, 인간관계에 지쳐 혼자 지내는 청년들, 그리고 정규직 전환은 여전히 어렵고, 사람들은 여전히 잔인하고, 나는 여전히 흔들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광증은 오지 않았다. 아니, 오려다가 멈췄다가 맞는 말일 거다. 내가 도망치지 않으니까. 내가 나를 버리지 않으니까.
진실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진실을 모르면, 사람은 반드시 더 잔인한 방식으로 무너진다. 진실에서 도망치면, 사람은 세상 모든 걸 제대로 마주칠 수 없다. 그렇기에 모든 인간은 첫 진실을 나 자신에 대한 직면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빨리 와! 뭐 하고 있어?”
주말, 오랜만에 함께 나온 엄마가 나를 부른다. ‘진정한 일상’의 행복에,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한다.
-
- 응, 빨리 갈게...
닿지 않을 한 마디가 거울 면에 부딪혀 툭―하고 떨어진다. 엄마가 나를 부름에도, 나는 엄마를 외칠 수 없다. 나는 거울 속에서 지켜만 볼 뿐이다.
거울 속. 거울 속으로 들어온 나―그 녀석, 아니, 네가 있던 곳―는, 아직까지 여전히 거울 속에 남아있다. 거울 한 겹.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절대 닿지 않는 거리. 나는 바깥의 ‘나’를 본다. 아니, 원래 내가 사랑했던 너를 본다.
너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하고, 엄마를 안기도 한다. 너는 가끔 거울 앞에 선다. 그때마다 나는 숨을 멈춘다. 네가 혹시 나를 볼까 봐. 아니, 네가 나를 보면… 다시 흔들릴까 봐.
거울은 진실을 비추는 물건이다. 그러나 진실을 보는 눈이 준비되지 않으면, 진실은 독이 된다. 그래서 나는 네가 충분히 단단해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다.
나는 너를 지켜본다. 네가 이제는 너로 살 수 있는지. 네가 더 이상 너로부터 벗어나지 않는지. 네가 광증 대신, 삶을 선택하는지. 거울 밖의 너는 때때로 하늘을 본다. 보름달이 뜨면, 잠깐 멈춘다. 그리고는 아주 작게 웃는다.
- 그 웃음이, 내게는 형벌이자 구원이다.
정말 웃기다. 내가 ‘나’일 때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원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로 변했을 때는 사랑에 빠졌다는 게. 얼마나 내 자신이 나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건지 우습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거울 속에서 너를 바라본다. 내 몸을 뺏은 너였지만, 결국 모든 진실을 감당한 채 살아가는 너야말로 진짜 ‘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기에.
평생을 거울 속에서 너를 지켜보며,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키워간다. 언젠가 네가 거울을 바라볼 때는, 정말 너처럼 내가 웃고 있을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