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er Wounds] Part 2

나를 흉내 내는 상처

by 윤지안


어떤 상처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상처로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상처는 밤마다 내부에서 번진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상은 외부의 충격으로 생기지 않는다.
사과받지 못한 말,
설명되지 않은 침묵,
“괜찮아”라는 거짓말이 반복되며
조금씩 장기를 밀어낸다.
마음속 장기들은 자리를 잃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서로를 눌러댄다.

나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멀쩡해 보이도록 훈련받았다.
웃는 법, 고개를 끄덕이는 각도,
공감하는 타이밍.
그 모든 것은 붕대를 감추기 위한 기술이었다.
피부 아래에서는 이미 출혈이 시작되었는데도.

내상은 통증을 천천히 준다.
처음엔 무감각이다.
“이 정도는 다들 겪어.”
“나만 예민한 거야.”
그 말들은 진통제처럼 작용하지만,
실은 상처를 더 깊게 만든다.
아프지 않다는 착각 속에서, 내부는 썩어간다.

어느 날부터 거울 속의 나는
나보다 조금 늦게 반응한다.
내가 웃고 나서야 웃고,
내가 슬퍼한 뒤에야 눈을 내린다.
그 지연은 경고였을까,
아니면 이미 시작된 분리였을까.

심리 호러는
괴물이 등장할 때 시작되지 않는다.
괴물이 필요 없을 때 시작된다.
아무 일도 없는데 숨이 막히고,
아무도 때리지 않았는데 멍이 든 느낌.
그것이 내상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갑자기 무너졌어?”
하지만 무너짐은 갑작스럽지 않다.
내상은 오래전부터 구조를 약화시켜 왔다.
마지막 한 마디, 마지막 기억,
마지막 침묵이
기둥을 건드렸을 뿐이다.

가장 무서운 점은
내상이 나를 흉내 낸다는 것이다.
“넌 괜찮아.”
“이건 네 문제야.”
“참아야 어른이지.”
그 목소리는 어느새 내 목소리가 되어
나를 설득하고, 나를 가둔다.

그래서 탈출이 어렵다.
가해자가 외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을 잠근 것도, 열쇠를 숨긴 것도
언제부턴가 나 자신이었다.

그러나 내상에도 흔적은 남는다.
사소한 소리에 과하게 놀라는 몸,
사랑 앞에서 먼저 물러서는 습관,
행복한 순간에 느껴지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
그것들은 내부에서 울리는 비명이다.

나는 이제 안다.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상처일수록
더 크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내상은 치유되지 않으면
정체성을 잠식한다.
하지만 이름 붙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다.
그저—돌봐야 할 상처다.

오늘도 나는
피부 아래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처음으로,
도망치지 않고 묻는다.

“어디가 아프니?”

그 질문 하나로
심리 호러는 멈추고,
회복이라는 또 다른 공포가
조심스럽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