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으나 회복되지 않음
사람들은 상처를 묻는다.
보이지 않게, 들키지 않게.
피가 흐르지 않으면 상처가 아니라고 믿으면서.
나 멀쩡해 보였다.
걸었고, 웃었고, 약속을 지켰다.
그래서 아무도 묻지 않았다.
“어디가 아프냐”라고.
내상은 소리 없이 자란다.
한 번 크게 다친 게 아니다.
사소한 말, 지나친 침묵, 반복된 무시,
그때마다 안쪽 어딘가가 미세하게 찢어졌다.
그 찢어진 틈은 곧 굳어버렸고,
굳은살처럼 감각을 잃었다.
문제는,
감각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것이 자란다는 점이다.
어느 날부터
나는 이유 없이 숨이 막혔다.
아무 일도 없는데 심장이 빨라졌고
즐거워야 할 순간에
몸 안에서 무언가가 “지금이 아니다”라고
속삭였다.
의사는 말한다.
“이상 없습니다.”
거울 속의 나는 말한다.
“거짓말.”
내상은 기억을 먹고 산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장면들을 다시 꺼내
다른 각도로 비틀어 보여준다.
그때 내가 왜 웃었는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왜 도망치지 않았는지를
끝없이 묻는다.
대답하지 않으면
통증이 대답을 대신한다.
밤이 되면
몸속에서 무언가 움직인다.
정확히는 회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억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다.
차갑고, 둔하고, 무게가 있다.
마치 장기 하나가
제자리를 벗어나 서서히 썩고 있는 느낌.
가끔은
이 고통이 나의 일부인지,
아니면 내가 이 고통의 숙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내상은 외부의 적이 아니다.
스스로 만든 밀실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닫아둔 문들이
어느새 나를 가두는 벽이 된다.
사람들이 말한다.
“괜찮아 보이네.”
그 말은 확인이 아니라 봉인이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 겹 더 안으로 접힌다.
무서운 건
아픔이 아니라
아픔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고통이 기준이 되면
정상은 사라진다.
숨 쉬는 것조차
의식해야 가능한 일이 된다.
언젠가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게 되었다.
“아프냐”라고.
대신 이렇게 묻는다.
“오늘은 들키지 않았나?”
이것이 내상이다.
터지지 않아 죽이지 않고,
치유되지 않아 살게 두는 것.
보이지 않는 상처는
항상 안쪽에서만 벌어진다.
그리고 그 전장은
결코 외부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멀쩡한 얼굴로
나의 내부를 지나간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미 무너진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