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세상만사를 다 비추는 투명한 것. 존재(存在)로서의 가장 얇은 표면이자, 실재(實在)가 스스로를 만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현상(現象)이 자신을 재현하는 유일한 장(場)이다.
우리는 그 앞에서 ‘나’라는 동일성을 확인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거울은 동일성을 보증하지 않는다. 거울이 돌려주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실재와 그 사이의 차이가 번뜩이는 순간들이다.
태양빛이 내려오고 나서야 세상은 인식 아래에 지배된다. 빛은 사물의 본질을 계시하고, 모든 사물은 가시성을 조건으로 동반된다. 보인다는 건 곧 선택하는 것, 선택하는 건 곧 배제로 이어진다. 보이지 않는 것은 사라진다. 남겨진 것은 정리된 세계다. 정오의 거울이 특히 위험한 까닭은, 그 정리가 너무나 맑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오 아래의 거울은 진리의 얼굴이 아니라, 배제의 논리를 가장 아름답게 숨긴 물건이다. 거울의 반사는 단순한 되돌림이 아닌, 주체가 자신을 대상화하는 최초의 장치요, 의식이 타자로 변해 다시 자신을 바라보는 변증법적 매개체이다.
거울 속에서 나는 보는 자이며, 동시에 보여지는 자로서, 있는 그대로의 나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 거울이라는 유리 한 겹이 경계가 되어, 그 경계에서 우리는 자존(自尊)의 권리는 청구한다. 그러나 거울은 침묵한다. 본인은 되돌려줄 게 없다는 듯이. 언제나 침묵은 논증보다 강력한 판단이다.
이를 종합할 때, 자존은 실체가 아니라 그 과정이자 기획이요, 우리는 매 순간 나 자신을 수행하며, 스스로 자존의 허구를 연장한다. 우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수행되는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나 자신을 연기하며, 스스로 자존의 허구를 연장한다. 거울 속의 나는 원본도, 사본도 아닌, 나의 시뮬라크르. 원본의 실존은 상관없이, 원본을 은폐하는 시뮬라크르. 나보다 나에게 제일 먼저 도착하여, 나를 대신해 나로 행세하는 표상.
거울 속 투영은 좀 더 근본적인 사건이다. 내부의 결핍과 과잉,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욕망, 기억의 잔여물 따위를 거울에 던져 표면에 붙인다. 그렇게 밖으로 내보낸 것들이 나라는 이름을 얻는다. 마치 실존은 없다는 듯이, 투영마저도 우리를 기망한다.
거울 속 존재와 실존 그 사이에서, 우리는 이중성을 느낀다. 이중성이란, 도덕적 결함이 아닌 존재의 구조적 조건이다. 누구도 하나의 중심을 가지지 못한다. 우린 수많은 관점, 서로 다른 시간대가 겹친 줏대를 들고 산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지우려 할수록 그 지움의 흔적은 거울에 남는다. 거울에 남지 않을지언정, 우리가 실존이라 부를 그것에 남을 것이다. 거울은 지워진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워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두운 밤, 우린 창문을 통해 거울을 볼 수 있다. 창이 거울이 되는 까닭은 외부가 소거된 그 자리에서 우리의 내부가 세계의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검은 유리 위로 떠오르는 나 자신은 실내의 사소한 조명에 의해 창을 넘어 거울의 역할이라는 초월, 그 환상을 획득한다. 하지만 그 초월은 빛 따위에 의존하는 현상, 즉 내부의 변장이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는 게 아니라 나의 표면을 그럴듯하게 만들려는 것일지도.
이런 와중에도, 태양빛은 계속해서 세상만물과 우리를 현상학적으로 환원한다. 세상 속 불필요한 것은 걷어내기도 하면서, 때로는 정의를 독점한다. 우리는 그 독점에 순응하기도, 저항하기도 하며, 가끔은 태양 아래 그림자에 기대기도 한다. 그러나 그림자 또한 태양의 부속물. 어둠이라는 부정성마저 양성의 이분법적 논리에 포섭되는 순간, 우리는 서있을 곳을 잃는다. 즉,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허나 우리는 거울 앞에서 매번 같은 질문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가 아닌, 나는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물어야 한다. 실존의 정체성은 답으로 떨어지는 게 아닌 지속되는 질문과 탐구의 과정이다. 앞서 보았듯 거울은 때로는 우리를 기망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함께 해주는 가장 냉정한 교사이기도 하다. 그 앞에서 우리는 나의 실재와 실존을 주장하는 대신 태양 아래 거울 속 나의 가시성을 관리하는 법을 배운다.
마침내 우리는 이해한다. 거울은 우리를 비추는 물건이 아니라 우리를 성립시키는 조건이요, 주체가 주체로 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타자로서의 통로다. 투영과 반사 속의 우리는 나의 구원도, 나의 적도 아니다. 그것은 나의 필연, 나를 둘로 갈라놓아 그 틈 속에서 나의 실존을 발화시키는 존재론적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