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바구니 아래 묻힌 검은 상자
작품: 장 프랑수아 밀레, - <만종> The Angelus (1857-1859)
미술 교과서의 표지, 관광지의 엽서, 그리고 평온함을 연출하고 싶은 거실의 벽면까지 우리는 밀레의 '만종'을 평화의 동의어처럼 배웠다. 저녁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들판, 하루의 노동을 마친 부부가 고개를 숙이고 감사 기도를 올리는 장면. 교과서는 이것을 노동의 신성함과 수확의 기쁨이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밤 11시, 미술관의 적막 속에서 이 그림을 다시 보면 기묘한 위화감이 목덜미를 스친다.
저들의 기도는 감사라기엔 지나치게 처연하다. 수확의 기쁨이라기엔 바구니는 지나치게 비어 있다. 우리는 저 고개 숙임을 늘 감사의 기도로 읽어 왔지만, 정말 그것뿐이었을까.
1938년,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어릴 때부터 이 '만종'을 보면 알 수 없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며 발작적인 불안감을 느꼈다. 그는 "이 그림은 평화로운 기도가 아니라, 장례식이다. 저 바구니는 감자가 아니라 아기의 관이다"라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당시 사람들은 달리가 또 미친 소리를 한다고 무시하며 비웃었으나 달리의 직감은 단순한 망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십 년 후 1963년 루브르 박물관이 이 그림을 X-ray로 투시했을 때, 미술계는 침묵에 빠졌다. 감자 바구니가 그려진 짙은 갈색 물감 아래에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네모난 상자 모양의 밑그림이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말 감자를 담는 바구니의 초기 스케치였을까, 아니면 달리의 주장대로 가난한 부부가 묻으려 했던 아기의 작은 관이었을까. 미술사는 아직 이 네모난 상자의 정체를 확정 짓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밀레가 살았던 19세기 빈민가의 현실을 안다. 굶주림은 일상이었고, 아이들의 죽음은 흔한 풍경이었다. 만약 밀레가 처음에 관을 그렸다가, "죽음이 담긴 그림은 팔리지 않는다"는 주변의 만류나 스스로의 검열 때문에 그 위에 덧칠을 했다면?
부부가 땅을 파고 있던 것이 감자가 아니라, 자식을 묻기 위한 무덤이었다면 이 그림의 모든 맥락은 뒤집힌다. 저녁 종소리는 노동의 끝을 알리는 종이 아니라, 떠나가는 영혼을 위한 진혼곡이 된다. 부부의 등 뒤로 흐르는 저 황혼은 따뜻한 노을이 아니라, 모든 희망이 저물어버린 후의 체념 섞인 어둠으로 읽힌다. 남자의 구부러진 등과 여자의 모아 쥔 손에는 수확의 보람 대신, 차마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부모의 억눌린 오열이 배어 나온다.
우리는 그 침묵의 두께를 경건함이라고 착각하며 감상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예술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지만, 어떤 예술은 진실을 감당할 수 없어서 덮어버리기 위해 완성된다.
밀레는 침묵했다. 그 네모난 상자가 무엇이었는지 끝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밤 11시, 당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단순한 감자 바구니가 아닐 수도 있다. 세상이 보고 싶어 하는 평화를 연기하기 위해, 작가가 스스로 검은 물감 속에 숨겨 버린 진실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가장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일수록, 그 바닥에는 가장 깊은 비명이 묻혀 있는 법이다.
밤 11시의 도슨트만이 조용히 떠올려 보는 가능성.
그가 끝내 말하지 못했던 죽음 위에, 살아가기 위한 하루의 풍경을 덧칠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Vibbidi Vobbi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