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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 Apr 12. 2022

나는 이제 엄마를 용서할 수 있다

엄마도 나도 결국 서툰 한때를 지나고 있으니까

단축근무 시작으로 이른 시간에 퇴근을 하고 집에 왔다. 한동안 저녁 시간에 볼 수 없었던 엄마를 본 것만으로 아이가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우주는 피곤해서인지 유난히 사소한 것에 자꾸 짜증을 토해냈다. 우주의 잦은 짜증과 화에 신경이 곤두선 나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우주 너, 자꾸 이렇게 짜증내고 화내면 엄마 이제 집에 빨리 안 올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아주 다행히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지 않고 삼켰다. 어렸을 때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서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빠와 살던 나는 열세 살이 끝나갈 무렵, 다시 엄마와 살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와 사이가 나빠지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사춘기였다. 사춘기가 모든 것을 정당화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때 나는 엄마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나는 나를 둘러싼 ‘불우한’ 환경에 힘들어하느라 엄마의 입장이나 엄마의 마음을 돌볼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내내 꿈꿔온 대로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그건 내가 꿈꾸던 모습과는 달랐다. 가령 내가 꿈꾸던 엄마는 공부를 하고 있으면 자상한 미소로 간식을 챙겨주는 그런 엄마였는데, 현실 속 나의 엄마는 하루 열두 시간 가까이 식당에 매여 일을 하느라 항상 피곤과 짜증으로 가득했다. 내가 꿈꿔오던 엄마의 보살핌 대신 나는 갑자기 나타난 아홉 살이나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고, 생전 본 적 없는 아저씨를 아빠라고 불러야 했다.


엄마와 나는 자주 부딪혔다. 엄마는 화가 나면 나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그럴 거면 아빠한테 돌아가. 아빠한테 가고 싶어?” 

“안 되겠다. 그냥 널 다시 아빠한테 보내는 게 낫겠다.”


엄마의 그 말은 비수가 되어 어린 내 가슴에 꽂혔다. 아주 깊이. 그러니까 그 말은, 내가 엄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다른 엄마들도 화가 나면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말은 꽤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너 자꾸 이러면 엄마 집에 빨리 안 올 거야.”


이 말이 내 입 안에 맴도는 순간, 엄마의 그때 그 감정이 내 심장을 관통하듯 지나갔다. 엄마의 얼굴이 내 얼굴 위로 겹쳐졌다.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감내하며 전 남편의 딸을 데리고 왔던 엄마는 그걸 알아주지 않는 철부지 딸이 원망스럽고 미웠을 것이다. 엄마의 어려운 선택에 대한 보상심리가 엄마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엄마 안에 자리 잡았을 것이고 그때 40대 중반에 불과했던 엄마는 지금의 나처럼 미숙하고 서툴렀을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나면 채 걸러지지 않은 감정을 담아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던 거다.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그때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것 같아졌다. 

아주 오랫동안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었던 그 말이, 사실은 그저 고단하고 지친 하루의 끝에서 불쑥 튀어나온 서툰 말이었을 뿐이었다는 그 깨달음에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그때 엄마의 나이는 지금의 나랑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다. 그래, 엄마도,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매일매일 지치고 힘들었겠구나.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 딸 때문에 매일 혼자 외롭게 헤매다 주저앉아 속 끓이던 날이 많았겠구나.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워보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지혜롭다면 참 좋겠지만, 똥인지 된장인지 늘 먹어봐야 아는 나는, 엄마가 돼서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엄마가 되어서.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몰랐을 엄마의 마음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엄마가 뭐 그러냐고, 어른이 뭐 그러냐고 날카로운 말을 내뱉던 10대의 나는 이제 서툴었던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숙했던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오래전 나의 엄마보다는 조금 덜 서툰 엄마가 되어볼 참이다. 나의 서툰 말이 오랫동안 아이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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