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경 Apr 14. 2022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많은 것들 중 하나는 '아이는 절대 혼자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을 나는 몰랐다. 

내 기억이 시작된 이래로 항상 내 잘난 맛에 살았던 나는, 내가 알아서 혼자 컸다고만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내 키가 한 뼘 자라는 시간 뒤에 누군가의 보살핌이 있었다는 걸, 2교시가 끝나면 친구들과 모여 까먹던 도시락을 싸기 위해 누군가의 노동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 사실을 잘 몰랐기에 그리고 몰라도 됐기에, 그 시기의 나는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엄청난 특권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떠올랐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나의 작은엄마다. 

어렸을 때 엄마 없이 아빠와 같이 살던 나와 오빠는 방학이면 으레 작은집에 머물렀다. 한 번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여름 방학, 매일같이 빌려 와서 보던 강시 영화 시리즈가 족히 열 편은 됐던 걸 생각하면 최소 1-2주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릴 적 나는 작은엄마가 있는 작은집에 가는 게 좋았다. 그곳에서는 항상 따뜻하고 맛있는 밥과 간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쾌적한 이부자리에서 잠을 잘 수 있었고 영화 구경을 간다거나 놀이동산에 간다거나 하는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해볼 수 있었다. 

어떤 여름밤에는 레고로 엄청난 규모의 해적선을 만들기 위해 사촌동생 둘과 작은엄마와 함께 거실에 등을 굽히고 앉아 눈이 벌게질 때까지 레고 조각들을 찾고 조립했다. 열 살 되던 여름 방학에는 사촌 동생의 두 발 자전거로 자전거 타기를 마스터할 수 있었고 어린이 회관에 가서 우뢰매 같은 영화를 본 것도 모두 작은집에 머물던 때였다.


단편적인 몇 개의 장면과 사건으로 남아있는 그때의 기억에 오랫동안 작은엄마의 노동은 없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비로소 '작은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아이 넷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치우고 보살폈을까'란 생각이 든 거다. 노는 것이야 어느 정도 큰 아이들끼리 모여서 노니 그냥 두면 되었겠지만 삼시 세끼를 차려 먹이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거다. 남편과 둘이서만 살 때도 삼시 세끼는 힘들어 아침은 대충 시리얼이나 빵으로 때우던 걸 생각해보면 그건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노동이다. 

그뿐인가. 네 명의 아이를 먹이고 어딘가에 데리고 가는데 들었을 비용은.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아빠가 혹시라도 사례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럴리는 없었을 것이다. 엄마가 작은엄마에게 오빠와 내가 입을 옷을 사라고 돈을 보내주셨단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우리가 머무르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엄마가 부담해주진 않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 나자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 그리고 작은엄마에 대한 존경심이 몰려왔다. 


그때부터 명절이면 작은집에 선물을 사서 보내기도 하고, 인사를 하러 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결국 나는 더 많은 것을 받고 돌아온다. 한사코 마다 해도 주머니에 넣어주시는 봉투, 10첩은 넘는 정갈하고 건강한 밥상 그리고 따뜻한 환대. 

아마 어렸을 때 내가 진 빚은 앞으로도 절대 갚지 못하지 않을까.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작은엄마, 작은아빠 앞에서 여전히 나는 보살핌을 받는 어린 조카아이인 것만 같다.




얼마 전, 한 지인이 단체 카톡방에 하소연을 올렸다. 시동생 부부가 출산을 하자마자 코로나에 걸려 생후 3일 된 아기가 집에 와있다는 거다. 이제 8개월밖에 되지 않은 둘째와 다섯 살 첫째를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이미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있는 지인이었다. 맙소사. (생후 3일 된 아기는 우리도 키워본 적 없는데!! 병원과 조리원에서 다 키워줬는데!!)

‘미안하지만 아이 물품 소독 좀 잘해달라’고 시동생 부부가 보낸 카톡 메시지를 전해 들으며 지인의 힘든 상황에 함께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동생 부부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부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 게 분명하니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건지, 생후 3일 된 아기와 생후 8개월 된 아기 그리고 다섯 살 된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노동이 어떤 강도인지 짐작조차 못 할 테니까.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경험하기 전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육아가 아닐까. 

지금도 자기의 모든 시간을 내어 이 세상에 와준 ‘새사람’을 돌보고 있을 양육자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이제 엄마를 용서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