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경 Apr 25. 2022

아이를 핑계로 좁아진 반경

배낭여행을 다닐 때 간혹 아이를 동반한 여행자들을 마주칠 때가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인도의 고아에서 네다섯 살 정도 되는 아이(어쩌면 더 어렸을지도 모른다)를 오토바이 앞자리에 태우고 해변도로를 질주하던, 드레드 헤어를 한 여행자였다. 위험하지 않나, 걱정이 되는 한편 파격적인 그 모습이 꽤 멋져 보였다. 

또 한 번은 커다란 배낭을 등에 메고 유모차에 탄 아이와 품에 안은 아이 둘을 데리고 길을 가던 부부 여행자를 마주쳤는데, 내가 메고 있던 배낭보다 훨씬 더 큰 배낭에 유모차까지 밀고 가는 건장한 모습의 두 부부가 정말 멋져 보였다. (내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그 두 부부의 얼굴은 분명 피곤에 절어 있었을 게 분명하다.)

나는 그 여행자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 아이와 전 세계를 여행할 거라고 생각했고, 임신 중일 때만 해도 나는 아이가 조금 크면 세렝게티에 가서 아이에게 초원에서 뛰노는 동물들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육아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아이를 데리고 하는 여행이 어떨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거다. 




역시 현실은 달랐다. 맙소사, 여행은 무슨, 아이와 외출을 할 때 잔뜩 긴장을 한 채 아기띠를 할지 유모차를 끌지 조차 고민을 하며 망설이는 게 나의 현실이었다.

아기띠를 하고 너무 오래 걸으면 어깨가 아파서 유모차가 편했는데, 문제는 유모차에 태우고 나갔다가 아이가 안아달라고 울어대기라도 하면 아이를 안은 채 한 손으로 유모차를 끌어야 했다. 몇 번 그런 경험이 쌓이고 나자 어떤 선택도 쉽지가 않았다. 아이가 100일이 지나면 함께 동네 곳곳을 산책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몇 번 된통 고생을 한 이후로 점점 아이와 하는 외출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아이를 핑계로 나의 활동 반경은 점점 좁아져만 갔다. 남편이 없으면 어디를 가고 싶지 않았다.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아이와 둘이 외출을 하면 의외로 순조로워 깜짝 놀랄 때가 많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계속 ‘안 돼, 힘들어’라는 말이 자리했다. 무슨 외출 포비아라도 걸린 것 마냥 외출할 일이 생기면 이 핑계 저 핑계를 찾아 그냥 집에 있을 궁리를 했다. 무슨 핑계로든 나갈 일을 찾던 내가 ‘집순이’가 된 것이다. 그 어떤 것에도 겁이 없던 내가 ‘쫄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나로서도 당혹스러웠지만 바깥에서 일어날, 예측 불가능한 아이의 반응이 나는 너무 무서웠다. 

아이가 크면서 외출이 점점 수월해지긴 했으나 그래도 아이와 둘이 먼 곳을 가는 건 엄청난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차를 타는 걸 싫어하고, 컨디션이 무너지면 어김없이 생떼가 나오는 아이와 일상의 흐름을 깨는 무언가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것을 자주 포기했다. 지인의 집에 놀러 가는 것도, 당일치기 여행을 하는 것도,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하지만 아이는 정말 부지런히 컸다. 

한 번은 아이와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가야 할 때가 있었다. 낮잠 시간도 아니고 아이가 버틸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이는 가는 내내 동요를 부르고, 이야기 동화를 듣고, 창밖을 구경하며 나름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냈다. 예전 같으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안전벨트를 풀겠다고, 내려달라고 울었을 아이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있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최근엔 혼자서 유치원 실내화를 가방에서 꺼내 빨아놓고(물을 잔뜩 묻혀놓고), 미용실에서 머리 자르는 것도 처음으로 성공한 아이를 보며 내 모습을 돌아본다.


아이가 못 견딜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갑자기 닥쳐올 상황에 대한 불안감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반경 안으로 많은 것들을 제한 지어 왔다. 아이는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도전하며 크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아이 핑계를 대며 나의 한계를 좁히고만 있는 건 아닐까. 아직은 아이에게 내 시간을 더 많이 주고 싶다는 건 어쩌면 실패를 맛보고 싶지 않아 만들어내는 핑계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일을 머릿속으로 구상하다가도 어느 순간, 아니다, 아직은 아이가 어리니까 조금만 더 크면 하자, 라며 비겁하게 숨는 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럴 때가 아니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가 크듯, 나도 클 때가 되었다. 조금 더 용기를 내자고, 나의 한계를 조금 더 넓혀보자고 오늘은 다짐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