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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 May 03. 2022

규칙이 많은 엄마,
통제 성향이 강한 아이


“우리 가족 중에 제일 귀여운 사람은?”

“우주!”


“우리 가족 중에 제일 예쁜 사람은?”

“엄마!”


“우리 가족 중에 제일 괴팍한 사람은?”

“아빠!”


“음, 그럼 우리 가족 중에 제일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은?”

“엄마!”


아이와 차를 타고 가면서 ‘우리 가족 중에~’ 문제 내기 놀이를 했다. 문제를 내면서도 답을 알 것 같긴 했지만, 역시 화를 가장 많이 내는 사람으로 내가 뽑혔다.


“또! 또!”


“음, 그럼 우리 가족 중에 발 냄새가 제일 고약한 사람은?”

“아빠!”


“우리 가족 중에 제일 잘 웃는 사람은?”

“우주!”


‘또, 또’를 외치는 아이 때문에 질문을 계속 쥐어짜내는데 운전을 하던 남편이 불쑥 끼어들었다.


“우리 가족 중에 규칙이 제일 많은 사람은?”

“음~음~엄마!!”

“맞아! 엄마야! 엄마는 맨날 규칙을 만든다니까!”


잠시 고민하던 아이는 규칙이 많은 사람으로 나를 꼽았고, 남편도 맞장구를 쳤다. 그건 화를 많이 내는 엄마보다 훨씬 더 나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20개월 무렵이었나. 하루는 저녁 밥상을 차리는데 아이가 난데없이 밥을 방바닥에서 먹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갑작스런 아이의 고집에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어느 육아책에서 일상생활습관을 일관된 원칙으로 알려줘야 한다고 했던 게 생각나 아주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세 살 아이의 무지막지한 생떼를 경험하고 충격과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다음날 두 아이의 엄마이자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위험한 것도 아닌데 그냥 한 번 들어주지 그랬냐는 친구에게 일관성은 어떻게 하냐고, 계속 그러면 어쩌느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그랬다.


“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러니까 진짜 이상하다. 뭐, 어때. 그게 위험한 일도 아니잖아. 그렇다고 애가 맨날 방바닥에서 먹자고 하겠어?”


망치로 머리를 쾅,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친구 말이 맞았다.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살다보면 방바닥에서도 먹고, 풀밭에서도 먹고, 교실에서 수업 듣다가도 몰래 먹고, 움직이는 차 안에서도 먹고 하는 게 밥 아닌가. 


돌아보면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계속 어떤 규칙에, 내가 만든 어떤 틀에 집착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이렇게 된 건지, 그동안 발현되지 않았던 기질이 육아를 만나 극대화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아직도 나를 ‘세상 자유로운 영혼’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나는 항상 규칙을 깨고 틀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아이였는데. 나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아이가 점점 크면서 아이에게 강한 통제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강박적이라고 할 만큼 강한 통제성향을 가진 아이를 바라보다가 그 안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에 항상 규칙을 어기고 벗어나고 싶어 했던 건,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만의 통제력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이라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그 생각에 다다르자, 어쩌면 아이도 그런 것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스로 하는 게 많아졌지만 여전히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인 아이. 엄마, 아빠, 선생님에 의해 만들어진 규칙 안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따라야만 하는 입장의 아이. 자신의 의사를 완벽하게 표현하기에 아직은 서툴고, 설령 표현하더라도 그것을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 그런 아이는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만의 방식이 필요한 것인지 몰랐다. 

뭐든 다 자기가 혼자 하겠다, 먼저 하겠다, 자기에게 허락을 받아라, 간혹 자기 생각과 다른 상황이 닥치면 모든 걸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하라, 별 것 아닌 것에도 강하게 분노를 터뜨리던 아이를 떠올려보니 왠지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목이 터져라 울던 아이가 느꼈을 답답함이 뒤늦게 내 가슴을 조여 왔다. 나는 더 이상 규칙을 만드는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통제하는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밤,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에게 마법의 단어가 하나 생겼다. 내가 내 맘대로 안 돼서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하려는 순간, 내 잔소리가 시작되려고 하는 그 순간 남편은 나에게 말한다.


“너 지금 통제하려고 그러지? 막 통제하고 싶지?” 라고 깐죽대면서.

그러면 딱딱하게 굳어가던 나는 나도 모르게 무장 해제되어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만다. 


“아, 맞다. 나 통제 안하기로 했지!”


그렇게 나는 조금씩 통제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있다. 대신 아이는 조금 더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기로 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아직 더 많은 아이에게 통제 성향은 자기의 세계를 지키는 유일한 수단일지 모르니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거니까. 

강박에 가까운 아이의 통제 성향을 어떻게 고치지, 가 아니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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