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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 Apr 05. 2022

엄마를 찾는 아이

이만 잘까, 책이라도 조금 더 보고 잘까 하던 차에 안방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가 더 커지는 걸 보니 스스로 잠들진 않을 기세라 부랴부랴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잠결에 깨서 울다가도 방문이 열리고 내 목소리가 들리면 울음을 멈춘다. 

"엄마 왔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재빠르게 잠옷으로 갈아입는데 침대에 가만히 앉아있는 아이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냥 누워서 자면 좋으련만... 재빨리 잘 채비를 마치고 침대로 다가가자 아이는 어느새 서서 나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었다.


"엄.마!"


내가 세상의 전부라도 되는 것 마냥, 저녁 내내 보고 싶었던 마음을 가득 눌러 담아 나를 부르는 아이의 '엄마' 소리에 이상하게 가슴이 미어졌다. 아이는 내가 안아주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봤다. 내 오른손을 꼭 잡은 아이의 손이 따뜻했다.




우주는 '엄마'를 인식하기 시작한 후부터 항상 '엄마 껌딱지'였다. 아빠가 아무리 재미있게 놀아주고 맛있는 것을 줘도 소용없었다. 우주는 무조건 '엄마'만 찾았고 특히 잠이 들 때에는 내가 없으면 안 됐다. 우주는 졸리기 시작하면 내 옆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내 오른손을 깍지 끼듯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우주는 애착 인형 대신 항상 내 오른손을 찾았다.

그런 아이가 유치원에 간 후부터 엄마 없이 자는 연습을 해야 했다. 나의 근무시간이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인 데다가 근무지가 집과 멀어서 아무리 빨리 집에 와도 9시 30분이었다.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가 그 시간까지 버틸 수는 없었다.

며칠 동안 잠잘 시간만 되면 울먹거리며 나를 찾다 퇴근하는 나에게 전화를 걸던 아이는 조금씩 엄마 없이 자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기 전 내 베개를 자기 베개 옆에 나란히 놓아둔다고 했다. 가끔 엄마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하고 외쳐보고, 어떨 때는 내가 벗어두고 간 옷을 만지며 '엄마'를 부른다고 했다. 


아이보다 더 버티기 힘든 건 사실 나였다. 남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엄마를 그리워하다 겨우 잠들었을 아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아이가 적응을 해야 하는 거라고, 아마 아이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2주일도 채 되지 않아 나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단축근무를 신청하기로 한 거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주말에만 아이를 보는 부부도 있다고, 이 정도는 큰일이 아니라고 몇 번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마음은 다른 말을 했다.


나는 열 살 이전까지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다. 부모님은 내가 네다섯 살 즈음에 이혼을 했고, 그래서 열 살이 되어 엄마를 다시 만날 때까지 엄마 얼굴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엄마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 내내 ‘엄마’라는 존재를 그리워했다. 

할머니를 비롯한 주변의 친가 친척들은 모두 모이기만 하면 엄마를 흉보기 바빴다. 나는 그 한가운데에서 ‘나중에 엄마를 만나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버릴 거야’라고 말하는 아이였다. 나의 말에 깔깔 웃는 어른들을 보는 게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린 나는 사실 ‘엄마’가 항상 그리웠다. ‘엄마’가 보고 싶었고, ‘엄마’가 있는 집이 부러웠다.

그래서일까, 우주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엄마’하고 부르면 가슴이 미어진다.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었던 엄마를 그리워하던 내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올라 지나치게 슬퍼지고 마는 거다. 




잠든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결핍이 없을 순 없을 거라고. 어떤 식으로든 아이에게는 내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종류의 결핍이 생길 것이고, 그 결핍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이가 ‘엄마’에 대한 결핍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로 인해 외롭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저기 먼 이국 땅,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있는 아이들의 말간 얼굴을. 내가 지켜줄 수 없는 다른 많은 아이들을.


오늘 밤은 이상하게 마음이 많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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