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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 Mar 28. 2022

보이지 않는 선이 연결되면, 친구


"아빠 친구는 언제 생기는 거예요?"


유치원에 다녀온 우주가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단다.

유치원 생활 2주차가 되었는데 우주는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친구가 많이 생겼냐고 물으면 아니라며, 휙 돌아서 가버리곤 했다. 담임 선생님은 유치원에 우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냐고 물었지만 우주는 전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우주는 아기 때부터 그랬다. 낯가림이 심한 것도 심한 것이었지만 무언가에 적응할 때까지,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까지 한참동안 지켜보며 나름대로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이 지나면 잘 어울릴 때도 있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나도 마음을 잘 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우주가 100일이 지나면서부터 조리원 동기들과 종종 모이며 아기들도 함께 보는 시간이 많이 있었다. 돌이 지나면서 다들 걸음마를 하고,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자 함께 모여 따로 노는 게 가능해졌고, 더 크자 자연스럽게 조금씩 상호작용하며 노는 모습이 늘어났다. 하지만 우주는 늘 먼 발치에서 다른 아이들을 쳐다보거나 혼자 놀았다. 그것도 아니면 나한테 매달려 놀아달라고 하거나. 가장 자주 본 친구들인데도 그랬다. 다른 아이들은 서로 대화가 잘 되지 않아도, 꽁냥거리며 같이 잘 노는데 우주는 좀처럼 잘 섞이지 못했다. 그게 늘 안타깝고 조바심이 났다.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 어린이집 상담 때마다 선생님에게 물어보면 선생님들은 전혀 걱정할 것 없다고 말했다.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친구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누가 옆에 다가오면 밀어내곤 하는데 우주는 그렇지 않다고, 오히려 친구들이 우주를 좋아하고, 우주도 친구들과 잘 어울려 논다고, 아마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찾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우주에게 친구가 생긴 건 네 살이 되던 해였다. 새로 옮긴 어린이집에서 서로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생긴 거다. 나는 워킹맘, 그 아이 엄마는 돌도 안 된 둘째를 돌보느라 정신없는 전업맘이라 서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지만 낯가림 심한 두 아이가 드디어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았다는 사실에 열심히 서로의 집을 오갔다. 아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도 있었고, 서로의 육아를 돕기 위한 것도 있었다. 때로는 그 아이 집에서 우주의 하원을 대신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둘째 육아에 바쁜 그 집을 위해 우리가 우주의 친구를 돌봐주었다. 부쩍 더 친해진 아이들이 함께 유치원에 가고 학교까지 같이 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움 많은 두 아이가 서로에게 아주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갑작스레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우주의 첫 친구이자 유일한 동네 친구는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우주는 꽤 자주 그 친구가 보고 싶다고 말했지만 거리가 멀어지자 보는 게 쉽지가 않았다.



아마도 어떻게 하면 친구가 생기는지 묻고 싶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 남편은 우주에게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고민하다 이렇게 말해줬다고 한다.

 

"음, 아빠 생각에는, 서로 떨어져있는 두 사람이 인사를 하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 

그때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연결이 되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선이 점점 두꺼워지면 그때 친구가 되는 게 아닐까?”


아빠의 설명을 들은 우주는 아주 아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단다.


“우주도 조금 두꺼운 선으로 연결된 친구가 한 명 생겼어요! 근데 이름은 몰라요.”


아마도 선생님이 이야기한 그 친구인 것 같았다. 우주가 올 때까지 우주는 언제 오냐고 찾고, 우주가 오면 신이 나서 폴짝 폴짝 뛴다는 그 친구. 그동안 아무리 물어봐도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던 우주가 드디어 그 친구 이야기를 꺼낸 거 보니, 아마 우주의 마음이 아주 조금 열렸나보다.

우주의 마음과 두꺼운 선으로 연결되는 친구가 점점 많아지길, 가느다란 선이 두꺼운 선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만큼 그 선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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