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당뇨 경과 일지
2008~2022년 14년 간의 기록
2008년 아버지는 당뇨병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는 직업상 담배와 술을 즐겨하셨고,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이었다. 일과를 마치면 삼양라면 2봉을 끓여 밤 12시에 후루룩 드시고, 후식으로 에이스, 맛동산 과자를 드셨다.
육체노동을 하시는 아버지는 노동과 운동은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헬스장을 끊어도 1번만 가고 다시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당뇨식에 대해 치밀하게 공부하셨고, 2008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집은 절대 쌀밥을 먹지 않는다. 덕분에 쌀밥보다 현미밥, 잡곡밥이 더 좋아졌다. 하지만 그것 말고 딱히 바뀐 것은 없었다.
그로부터 7년 뒤, 2014년 아버지는 여전히 하루에 술 한 병을 드시고, 담배 한 갑을 피우셨다. 그 나이 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당뇨병이라며, 아버지는 본인의 질환을 크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 이건 아버지 본인의 잘못만은 아니다. 아버지는 그때 우리 세 남매를 기르기 위해 외벌이를 하고 있었고, 주 6일 하루 14시간 근무를 하셨다. 부끄럽지만 우리 가족들도 애써 아버지의 질환을 등한시했다.
2017년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내과 검진을 받고 있었는데, 의사에게 혼이 났다. 여기서 더 이상 관리하지 않으면 의사도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고 했다.
2017년 아버지가 발가락이 많이 저리다고 하셨다.
10개의 볼펜촉이 발가락을 콕콕 번갈아가며 건드리는 것 같다고 하셨다. 통증은 아니었지만, 살면서 절대 느끼지 않았던 생소한 느낌이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우리 집에는 발마사지 기계, 휴대용 마사지 기계 두세 개가 비치되었고, 아버지는 항상 TV를 보면서 마사지 기계를 사용하셨다.
2018년 아버지가 어깨가 많이 아프다고 하셨다.
병원에 가봤지만, 의사는 50대 이상의 남성이 흔히 겪는 골관절 질환이라고 했다. 신경치료나 스테로이드 치료가 도움이 된다고 했지만, 일시적인 치료였을 뿐, 당뇨가 있는 아버지는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기를 거부하셨다. 그로부터 2020년까지 2년 동안 아버지는 밤새 통증으로 남은 가족들이 깰까 봐 손을 입으로 틀어막고 신음소리를 흘렸다. 밤에 잠에서 깰 때면 아버지는 계속 뒤척였고, 그동안 아버지는 평소보다 훨씬 피곤한 얼굴로 출근을 했다.
2019년 아버지가 쓰러졌다.
같은 시각, 나는 그때 곧 있을 공연을 위해 드럼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너무 슬펐다. 이제 정말 아버지가 환자라는 사실이 뼛속 깊이 다가왔다. 퇴원을 하고 나서 아버지는 담배와 술을 끊었다, 아니 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 번에 그 모든 게 바뀌기 어렵다. 아버지는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간식을 드시고, 사업차 사람들과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술과 담배를 하셔야 했다. 그렇지만 우리 집 식단은 저염식과 저당식으로 천천히 바뀌고 있었고, 아버지도 이전보다 건강의 중요성을 훨씬 느끼고 있었다. 평소 받던 동네의원을 옮겨 이젠 3달에 한번씩 대학병원에 가신다.
2019년 하반기 아버지가 한번 더 쓰러졌다.
그때 나는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있었고, 나중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부터 우리 집 식탁은 꽤, 아니 정반대로 바뀌었다. 짠 김치찌개, 마늘장아찌, 디저트보다 삶은 양배추, 구운 고등어, 무 된장국이 올라왔다. 아버지는 본인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담배와 술을 완전히 끊었고, 식간에 너무 배고프면 두부와 양배추, 당근을 드셨다. 생활습관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경제적 가치관도 완전히 바뀌었다. 주 6~7일 근무를 하던 아버지는 그 해 겨울부터 본인의 사업을 확연히 줄이셨다. 항상 열정, 근면, 성장을 강조하던 아버지는 건강, 안정, 여유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술과 담배를 끊기 위해 친구들과의 만남도 정리했다.
2020년 아버지는 경증 우울증을 앓았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음식, 담배, 술, 친구 등 모든 것이 제한된 삶을 사는 것은 나 같아도 너무 우울할 것 같았다. 아버지와 나는 수다를 떠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때만큼은 나도 아버지의 우울한 마음을 해결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일이 끝나면 컴퓨터로 삶과 죽음에 대한 영상을 보고, 울적한 노래를 들으면서 텅 빈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2021년 아버지의 신장기능이 많이 나빠졌다.
신부전이라고 했다. 책에서만 보던, 병원에서만 보던 신부전 환자. 여기서 더 심각해질 경우 투석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애써 이식받으면 된다고 분위기를 환기시켰지만, 아버지는 무척 침통해하셨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최애 간식 두부는 더 이상 먹으면 안 되는 음식으로 분류되었다. 아버지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지극히 한정적으로 좁혀졌다. (의사소통의 문제였다. 신장 상태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2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현미밥, 깻잎, 고등어, 무조림, 계란후라이.
아버지는 하루 두 끼, 1년 내내 항상 아침과 저녁을 이것만 드신다.
2022년 아버지가 코로나에 걸렸다.
신장 질환 때문에 NSAIDS 계열 진통제, 항생제는 먹지 못했다. 내가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아버지는 약을 먹기 무서워서 약국에도 안 가고 혼자 통증을 견디고 있었다.
비대면 진료 후 약국에서 약을 타왔다. 약품정보원에서 약의 주의사항과 복용법을 꼼꼼하게 읽었다. 약국에서 타 온 약 중에서도 당도가 있는 시럽은 제외하고, 신장질환, 당뇨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약은 빼고 아버지에게 드렸다. 오랜만에 내 간호사 면허증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다. 기저질환이 있어서 코로나 증세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