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준비하던 시험 때문에 한창 힘들어하고 있을 때, 출근하던 아버지가 만오천 원을 손에 쥐어주셨다.
공부하느라 덥고 힘들 텐데 밖에 가서 밥이라도 맛있는 거 먹으라는 말씀과 함께 아버지는 서둘러 출근길을 나섰다.
만오천 원을 받아선 나는 차마 그 돈을 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시험을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붙을지 안 붙을지 모르는 시험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도 싫었고, 시험에 붙는다고 해서 행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몰래 다른 직종 준비를 알아보고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로 돈을 써버리면 아버지를 속인 사람이 될 것 같아 스스로가 무서웠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아버지의 만오천 원은 그냥 은행에서 나오는 현금 만오천 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 현금은 마치 인격체처럼 느껴졌다. '이래도 네가 정말 시험을 포기할 거야?'라는 날 떠보는 것 같기도, '정말 네가 이거 다 쓰면 너 이번 시험 못 붙는다.'라는 협박하는 것 같기도 했다.
결국 스터디카페에 왔고, 해야 하는 공부는 안 하고 하염없이 이 현금을 보다가 나는 스카치테이프를 주르륵 뜯어서 이 현금 두장을 내 일일계획표 제일 앞에 붙였다.
그리고 일단 코를 책에 박다시피 검은색 글자들을 읽어갔다.
글이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만오천 원어치의 공부라도 일단 하자는 생각이었다. 떳떳하게 이 돈을 사용하려면 최소한 준 사람의 의도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엉덩이를 의자에 계속 붙였고, 시험을 포기하고 싶을 때, 울고 싶을 때, 불안할 때 계획표 제일 앞에 있는 만오천 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찬찬히 손으로 훑었다.
시간이 흘러 다행히 시험에 합격했고, 오늘 그때 공부했던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그 만오천 원을 다시 보았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찬찬히 쓸었다.
아, 지금 생각해 보니 이건 나에게 부적이었다. 내 정신줄을 붙잡게 해 주었고, 나에게 이 현금을 쥐어준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이 돈 어치의 책임감을 갖게 해주었고, 두려움을 버티고 더 엉덩이를 붙여서 공부하게 해 주었다.
시험에 붙지 않아도 나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었겠지만, 지금 내 모습은 과거의 내가 두려워하던 바와는 달리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아마 과거의 나는 상당히 미래가 불안하고 두려웠고 그래서 회피하려고 시험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다. 이 과정에서 배운 점은 적극적으로, 회피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해보자는 정신이었다. (mz말로 중꺾마..)
요새 물가에 만오천 원은 백반 하나, 청국장 하나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돈이지만이러한 깨달음과 결과를 안겨다 주었기에 이 만오천 원의 감정가는 나에겐 1000만 원 그 이상의 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