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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그리고 날인, 그 위험하고도 중대한 행위

by 문석주 변호사


“서명 없으면 무효죠?”


“도장 없으면 계약 효력 없죠?, ”인감증명서 없으면 계약 파기할 수 있죠?“, ”인감도장 아니고 막도장이면 무효죠?“ 부동산 상담을 하게 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들이다.

그런데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무효인 것은 아닙니다.“가 될 수밖에 없다. 계약서 등의 문서에 도장이나 자필서명 중 하나만 있더라도 해당 문서가 문서 작성자의 의사에 기해 작성되었다고 추정된다.

심지어는 도장이나 자필서명이 없더라도 스스로 자필로 내용을 작성하였다면 그 문서의 진정성이 인정되기도 한다.



문서에 도장이나 자필서명이 있다면 그 문서는 위조된 것이 아니라 적법하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 문서의 진정성립이 인정된다면 그 문서의 내용 역시 문서 작성자의 의사에 따라 작성된 것이라고 추정된다. 결국 문서에 자필서명이나 인장이 날인한 이후에는 그 문서 내용을 부인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처럼 서명이나 도장날인이 신중해야 할 일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서명이나 도장 날인하는 행위의 경각심이 심각하게 낮다.




“우리가 매매나 임대차계약을 하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부동산 매매계약이나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때를 떠올려 보면 서명이나 도장날인행위를 슈퍼에서 물건 사듯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계약서를 쓰기 위해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방문하는 경우를 떠올려 보자.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가기 전에 계약서를 미리 확인한 적은 없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계약서의 내용을 확인하려고 하나 글씨가 너무 작고 그 내용도 어려워 계약사항 읽는 것을 중간에 포기한다. 그리고 공인중개사는 말한다.

“가져온 도장 전부 주세요” 계약자는 가져온 도장을 공인중개사에게 맡긴다. 공인중개사는 계약자 쌍방의 도장을 받아 직접 도장을 찍는다.

공인중개사는 손가락으로 계약서를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에 서명하세요” 서명 전에 조금이라도 읽어보려 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아무 문제 없으니 믿고 일단 서명부터 하세요.” 계약자는 공인중개사의 재촉에 놀라 부리나케 서명을 한다.

도장이 찍히고 서명이 된 계약서를 얼떨결에 건네받고 떨리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계약서를 읽어본다.



부동산 계약서를 쓰는 순간 뿐 아니라 은행에서도 우리는 무아지경으로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한다.

은행원이 미리 계약서 서명할 곳에 체크를 하고 서류를 건네주면 우리는 읽어보지도 않고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하기 바쁘다.

실제 은행에서 대출계약이나 예금계약을 체결할 때 수없이 도장을 날인하고 서명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 계약서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도장이 찍히거나 서명된 계약서를 받아 들고 집에 돌아온 후 계약서의 내용을 확인하고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상대방의 양해 없이 이미 성립한 계약의 내용은 변경할 수 없다.




“서명이나 날인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관행”


서명이나 날인행위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태도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내린 잘못된 관행과도 관련이 깊다.

서명이나 날인이 필요한 문서의 경우 사전에 미리 문서를 보내주고 계약 당사자가 미리 검토할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현장에 가서 처음으로 계약서를 마주하게 되면 계약서의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실무에서는 계약서를 미리 보내주는 경우가 없다.

대부분 계약서 서명이나 날인을 위해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방문한 때 비로소 처음 계약서를 보게 된다.

현장에서라도 계약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계약 당사자가 계약 현장에서 계약서 내용을 확인할라치면 즉시 주변 사람들의 매서운 눈초리를 견뎌야 한다.

계약서 내용을 자세히 확인하는 것은 유별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결국 서명하는 순간까지도 계약서 내용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도장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대신 찍도록 하는 것도 문제다.

도장은 건네주는 것은 계약체결권한을 모두 위임하는 행위이다.

도장을 건네주었다면 계약 내용을 몰랐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도장을 건네받은 사람이 인지하였다면 도장 주인도 내용을 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계약서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서명이나 날인을 하는 관행을 이용한 사기행위가 많고 이로 인해 다수의 피해자들도 발생한다.

부동산을 매도하거나 분양하려는 사람들은 매물의 단점을 숨기면서도 추후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를 위해 계약서 중 일부에 매물의 문제점을 작게 기재해 놓고 실제 계약자가 계약서의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게끔 내버려두지 않는다.

심지어는 계약 내용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도장을 받아 날인한다. 이렇게 완성된 계약서는 이후 계약자에게 불리한 증거로 활용된다.

계약자는 나중에 불리한 독소조항을 발견하더라도 그 조항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이 어렵다. 결국울며 겨자먹기로 계약 내용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서명이나 날인은 계약서의 내용에 책임지는 행위”


우리 모두는 서명이나 날인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서명이나 날인하는 서류의 내용을 모두 읽고 동의한다는 일종의 확인행위라는 것을 말이다.

서류의 내용을 검토하고 인정한다는 의사료 서명이나 날인을 한 후 그 서류의 내용을 몰랐다고 번복하는 것을 법원에서는 믿어주지 않는다. 결국 서명이나 날인을 했다면 그 서류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2020.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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