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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약 그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by 문석주 변호사

다들 어릴 때 도미노 한번쯤은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도미노 완성에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도미노 조각을 조심스레 하나씩 세우다가도 잠깐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도미노 조각을 손에서 놓치면 그동안의 노력은 헛수고가 된다. 중간에 도미노를 멈추고 싶어도 이미 쓰러지기 시작하는 도미노를 멈추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쓰러지는 도미노들을 만지는 순간 도미노의 붕괴 속도는 빨라진다.



쓰러지는 도미노들을 만지는 순간 도미노의 붕괴 속도는 빨라진다.



부동산 분쟁을 주로 상담하다 보면 임대차보증금 반환 문제가 주요한 상담 주제 중 하나를 차지한다. 임대차보증금은 복잡한 법적 쟁점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단순한 문제일 때가 많다. 임대차보증금 분쟁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임대인이 임대차 계약 종료일에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문제이다. 소위 전세계약(법률적인 용어로는 “채권적 전세”라고 부른다)의 경우 임대인은 항상 임대차보증금을 본인 소유 통장에 보관해 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으면 종료일의 보증금 반환은 생각하지 않고 일단 필요한 곳에 보증금을 쓴다. 결국 대부분 보증금의 용도는 임대인의 부동산 구입비나 건물 신축비용이 된다.




임대차 계약기간 만료일이 다가오고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받은 보증금은 다른 곳에 써버렸기 때문에 임대인의 수중에는 임차인에게 반환해 줄 보증금이 없다. 결국 새로운 임차인 구해서 받는 보증금을 나가는 임차인에게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종전 임차인과의 계약기간 종료일에 정확히 새로운 임차인이 보증금을 내고 들어와야 한다. 종전 임차인의 퇴거일과 신규 임차인의 입주일이 일치하지 않으면 다시 문제가 발생한다. 임차인이 퇴거일에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면 새롭게 계약한 집으로 이사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임차인이 이사 가는 집의 잔금 역시 기존에 살던 집의 임대인으로부터 받은 보증금으로 충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대차 계약기간 만료일이 다가오고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받은 보증금은 다른 곳에 써버렸기 때문에 임대인의 수중에는 임차인에게 반환해 줄 보증금이 없다.


이처럼 소위 전세 계약은 폭탄 돌리기의 연속이다. A라는 집을 나가는 a임차인은 새로 들어오는 b임차인의 보증금을 받는다. a는 다시 B라는 집으로 이사 가면서 보증금을 지급하고 B라는 집의 종전 c임차인은 나가면서 a가 지급한 보증금을 받아 나간다. 하루에도 수많은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주고받으면서 이사를 오고 간다. 문제는 그 일련의 과정 중 어느 한 집에서라도 보증금 지급과 반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이후 보증금 미반환 문제는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쇄 보증금 미반환 사태는 임대인 중 하나가 자기 돈으로 보증금을 반환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전세 계약은 폭탄 돌리기의 연속이다.



전세제도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에 특수한 제도이다.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은 월세 연체를 대비하여 일정액의 보증금만을 예치해두고 매월 월세를 내며 거주한다. 거주의 대가로 돈을 지급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한국은 집에 거주하며 월세를 내는 것을 아까워한다. 대신 수중에 충분한 자금이 있거나 대출 신용만 확보되면 고액의 보증금을 지급하더라도 추후 이를 다시 반환받을 수 있는 전세제도를 선호한다.



전세제도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에 특수한 제도이다.



전세제도는 생각해보면 위험천만한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집에 거주하는 대가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거액의 돈을 맡긴다. 일단 돈이 지급되는 것은 쉽지만 이를 돌려받는 것은 어렵다. 물론 임대차 보호법 등을 통해 주민등록이나 확정일자를 받으면 저당권에 유사하게 거주하는 집을 담보물로 설정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러나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 법적 절차를 취하게 되면 돈, 시간 그리고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특히 주민등록이나 확정일자 등 법에서 정하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거액의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도 발생한다.



전세제도는 생각해보면 위험천만한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집에 거주하는 대가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거액의 돈을 맡긴다.



보증금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는 순간부터 임차인이 받는 정신적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으면 계획했던 주거계획은 모두 일그러진다. 전세 종료일에 맞춰 집을 매수하는 경우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으면 매수계약의 잔금을 지급하지 못하므로 매매계약이 파기된다. 설상가상으로 파기되는 매매계약의 계약금을 손해배상액으로 몰수당할 수도 있다. 동일한 다른 전셋집으로 이사 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약상 잔금을 자급하지 못하는 경우 계약금을 몰수당할 수 있다.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고 해도 그 소송기간은 6개월 이상이 소요되고 소송기간 동안은 결국 보증금을 반환받을 방법이 딱히 없다. 소송을 제기하고 몇 개월이 지난 후 판결이 나올 때쯤에는 이미 상황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고액의 보증금을 담보로 하는 전세계약은 사라지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러려면 먼저 주거비용의 안정화가 선행되어야 하고 주거비용을 당연시하는 인식의 확립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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