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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Park Nov 23. 2023

다시 태어난다면? 진부한 삶의 권태에 관하여

세상에 어떤 존재도 비어있는 공(空) 일 수 없기에

누군가 저에게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언제나 '이끼'라는 대답을 합니다.

현재의 삶을 제 의지로 선택한 것인지 탄생 이전의 일을 제가 알 수 없기에 생명 모두에 해당되지만.

우리는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는 누군가의 어떠한 뜻과 의도에 의해 저라는 존재는 인간으로 태어난 거라 생각해 보면 말입니다. 이왕 태어난 것. 이번 삶에서는 주어진 환경과 제게 주어진 기대치에 최선을 다하는 인간으로 살며, 놀며 떠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삶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30년의 삶에서 즐겁고 행복한 기억, 따뜻하고 포근했던 기억도 많지만 무언가를 성취하고 또는 쟁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억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인지 제 삶은 권태롭고 고단한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유가 없는 마음에 더 몰입하고 에너지를 쏟는 경향도 더러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나 아닌 타인에 대해 친절함과 다정함을 쏟는 데에는 조금 더 큰 힘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이 권태로움과 진부한 외로움을 어쩌면 즐기고 있는 거 아닐까 싶은 건 진한 사색을 가져다주기 때문일까요?


1.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하는 저는 그의 그림에서 다뤄지는 따뜻한 아침햇살, 포근하고 정돈된 방의 풍경, 잘 차려입은 사람들 그리고 잔잔한 바다로 그려지는 온화한 배경을 좋아합니다. 그 모든 풍경과 차림이 주는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고립된 느낌, 경직됨, 쓸쓸함의 감정의 묘사에 더 마음을 쓰지만요. 가끔 따뜻하게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과 달리 적막한 방과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저는 그 쓸쓸함과 고립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2. 이끼로 태어나겠다고 생각한 것은 하루 24시간 중 숙면을 취하는 3-4 시간의 시간을 제외하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해야 하는 강박에 있는 제 삶에 비해 그들의 삶이 오직 그늘지고 눅눅한 곳에서 광합성과 호흡만으로 누릴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다음생에도 사람으로 태어날 것인지, 혹은 어떤 생명으로 태어나고 싶냐는 물음에 저는 늘 아래처럼 대답했었답니다.


"아니, 나는 깊은 산속 옹달샘 돌에 붙은 이끼로 태어나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광합성과 호흡만 할래.


그래서 나를 찾는 이는 오직 목마름을 달래러 온 사슴이 물을 할짝 하는 순간에 나를 간지럽히는 그 느낌뿐일 것일 거라고,  달이 비추는 빛이 나는 반갑고 만나러 와준 토끼도 할짝, 사슴이도 할짝, 다람쥐도 할짝 하는 즐거움과 간지러움이 존재하는 순수한 삶을 살고 싶어. 그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걸."


3. 다만 유난히도 지쳤던 어제 문득 이끼는 어떤 존재인가 싶어 이끼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세상에 어떤 생명도 가볍거나 편하거나 나 개인만의 삶을 위해 무위도식하지는 않는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답니다. 이끼는 맨 땅이 드러나 식물이 전혀 없는 곳에 먼저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고, 다른 식물들과 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답니다. 기능과 역할에 대해 더 언급하자면 비를 저장하고, 홍수와 강에 의한 침식을 막고 등등의 과학적 설명도 있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제외하고...


4. 그 쓸모도 다양하여 상처와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 과거 유럽에서는 침대 속재료, 에스키모인들은 아기 기저귀를 만드는데도 사용했다고 하니 다만 내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그냥 혼자 살아가는데 급급한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었다는 거죠.


5. 그래서 다음생에 이끼로 태어나겠다는 다짐에 후회와 변화가 생겼냐? 하는 질문에는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이타적이고 남을 굉장히 챙기며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끼에게 베풀고 나누고 생명을 다 해가는 것에 대한 인색함이 없다면.. 또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내어주는 즐거움과 행복도 중요하지 않고 그 행위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그런 마음이라면 어느 땅에서든 뿌리내리고 군락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저는 너무 기쁠 것 같습니다. 미움도 증오도 질투와 시기가 없는 존재로 잠시 머물다 가는 이를 그저 반기며. 다만, 여러분. 외롭거나 권태롭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세상에 그 어떤 존재도 쉬이 가볍게 가치 판단을 하거나 공(空)의 존재일 수 없다는 걸.


6.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호호. 첫 글에 대한 인사와 소중한 독자분들께 전하는 안녕입니다. 최근에 계속 사람을 만나고, 외부 활동을 하고 쉬지 못했더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제 삶에 대해 잠시나 돌아보고 다음 생을 기약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존재로서 삶을 살아보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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