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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원형의 책 21화

난 황금알을 낳을 거야

한나 요한젠 /문학동네

by 고양이스웨터

다른 세상 꿈꾸기



독일의 작가 한나 요한젠이 쓰고 케티 벤트가 그린 《난 황금알을 낳을 거야》는 적은 분량이지만 재미와 감동과 교훈과 유머로 꽉 찬 그림책이다. 글과 그림이 유기적으로 잘 어울려서 보는 즐거움도 있다. 특히 그림을 보면, 수많은 닭들 사이에 토끼를 슬쩍 넣는 식으로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트릭이 있어 독서 중에 ‘숨은그림찾기’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야기는 속에 닭들을 가득 품은 닭 그림으로 시작한다.


어느 시골 농장에 3천 3백 33마리 닭들이 모여 산다. 닭장이 너무 좁아 꼼짝할 수 없는 닭들은 건강이 나빠져 기침을 해 대고 털이 숭숭 빠진다. 그 와중에 매일 알을 하나씩 낳는 닭들을 보며 우리의 주인공 꼬마 닭이 원대한 포부를 밝힌다.

“나는, 이다음에 크면 황금알을 낳을 거야.”


이때부터 이야기 속의 큰 닭들과 이야기 밖에 있는 독자는 꼬마 닭의 행동에 주목하게 된다. 황금 알을 낳는 닭은 옛이야기 속에나 나온다는 사실을 익히 알기에 맨 처음 반응은 비웃음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꼬마 닭은 황금 알을 낳을 준비를 하나하나 해 나간다. 노래 연습을 하고 헤엄을 치고 날기를 배운다. 좁은 닭장에서는 연습할 수 없으니 담벼락에 구멍을 내어 파고 파고 또 파서 파란 하늘이 보이는 닭장 밖으로 나간다. 맑은 공기를 마셔 더 이상 기침을 하지 않는 꼬마 닭에게 큰 닭들이 기침을 해대며 말한다.

“닭들은 그런 걸 할 필요가 없어.”


큰 닭들의 충고를 고분고분 듣는다면 말썽꾸러기 꼬마 닭이 아니다. 꼬마 닭은 황금 알을 맞이하기 위한 즐거운 의례를 수행한다. 그래서 결국 꼬마 닭은 노래 부르기를, 헤엄치기를, 날기를 할 수 있게 됐을까? 무엇보다 황금 알을 낳았을까? 그럴 수도, 어쩌면 아닐 수도. 분명한 건 꼬마 닭의 꿈이 3천 3백 33마리 닭들의 복지 증진에 기여했다는 것과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꼬마 닭에게 뽀뽀를 한 백 번쯤 해주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기성세대인 큰 닭들이 보기에 꼬마 닭은 귀여운 철부지였을 것 같다. 알은 낳아봐야 농장 주인이 다 가져갈 거고, 닭은 ‘꼬꼬댁’ 우는 게 고작인데 노래를 어떻게 부를 것이며, 발 갈퀴가 없으니 헤엄을 못 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지붕에 올라갈 줄만 알면 되지 훨훨 날아 어디 갈 데도 없지 않느냐고 닭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 건 이토록 쉬운 일이다. 그런 생각으로 닭똥과 사료 냄새가 뒤섞인 닭장에서 꼼짝 없이 알만 낳다 하루하루 죽어가는 닭들은 꼬마 닭에게 고작 자신들과 똑같은 삶을 살라고 가르쳤다. 꼬마 닭이 그 말을 안 들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애초에 꼬마 닭은 황금알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노래하고 날고 헤엄치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 그리고 바깥 세계가 궁금했을 뿐. 그 일을 하는 데엔 어른들이 좋아하는 ‘목적’이나 ‘의미’가 필요했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게 황금알이었던 게 아닐까. 주목하고 싶은 건 황금알보다, 담벼락에 구멍을 내면 좁은 닭장을 탈출할 수 있겠다는 상상이다. 담 밖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얼마나 파야 구멍을 낼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파란 하늘과 맑은 물을 상상하며 구멍 내는 일을 했다. 파다가 지칠 수도 있었고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구멍이 날 때까지 누구도 응원해 주지 않는 고독한 작업을 수행한 그 뚝심이라니!


가끔, 몰입해서 열심히 하는 일들이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괜한 삽질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꼬마 닭의 꿈을 비웃던 큰 닭과 같은 마음인데, 그럴 때 노회한 닭 말고 호기심 가득한 꼬마 닭이 되는 쪽을 선택하겠다고 단호히 선언하며 삽을 들어야겠다. 지금 당장 안 보여도 파고 파고 또 파다 보면 작은 구멍이 보이고 파란 하늘이 나타나고 어쩌면 그 하늘을 날 수 있게도 될지 모르는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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