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나는 투잡공인중개사가 되었다.

#1. 처음부터 공인중개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by 위드지니

사실 처음부터 공인중개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2011년 서른두 살, 7년간 준비했던 사법고시를 완전히 포기하고 지금의 신랑을 만나 약 2년 동안 연애와 결혼준비를 하였다.

2013년 결혼 후 바로 첫째 아이가 생기고 그리고 20개월 차로 둘째 아이를 낳았다.

아들 둘을 키우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그렇게 30대를 보내고 있었다.

김포에서 육아맘들끼리 소통하며 밤수유의 시간을 버텨냈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가게 되면서 조금씩 내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육아맘들은 종종 등원 후 커피를 한잔 하기도 했고 점심에 맛있는 걸 먹으러 가기도 했다.

그런 모임이 점점 나에게는 부담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남편은 이삿짐 사다리차일로 외벌이 었다.

겨울엔 꽁꽁 언 몸으로 일을 했고, 여름엔 폭염 속에서 일을 했다. 그렇게 5년 가까이 일을 하고 있었다.

마음 한편엔 나도 경제활동을 해서 무거운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어린이집 가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동네 수학학원에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시간당 1만 원을 받고 초등수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처음 받은 급여는 약 80만 원 가까이였다. 여간 뿌듯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원에서 일한 돈으로 아이들 간식 사주고 옷 사주고 내가 번돈으로 마시는 커피는 미안한 마음이 없이 마실 수 있는 커피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었다.

나를 찾아서 오는 학생들도 생기고 점점 맡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원장님은 시급제에서 비율제로 급여제를 변경해 주시고 중등수업도 맡으면서 급여는 약 300만 원대로 올라갔다.

그만큼 수업시간도 늘어나 퇴근시간이 늦어졌다. 남편은 어린 최형제를 돌봐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학원일에 점점 욕심이 생길수록 가정은 엉망진창이었고.. 부부싸움을 하기 일쑤였다.

학원수업 후 집에 오면 10시.. 저녁도 먹지 못하고 2시부터 수업을 하고 온 나는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재우면 11시가 넘어서야 뭘 먹을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아이들 어릴 때 일을 시작했나 하는 죄책감과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평생 학원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격증을 취득하자라고 생각했고 20대 때 법공부를 오래 한 덕분에 공인중개사 시험은 나에게 어려운 시험이 아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에 응시해도 합격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짧은 시간 공부하고 2018년도 29회 시험에서 1차는 합격, 2차는 공법과락으로 불합격하였다.

2차는 처음 보는 법과목이 공법과 중개사법, 그리고 세법이 있었다.

그렇게 유예생이 되었고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공인중개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공인중개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나니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부동산에 관심 없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영업능력 없는 내가 직업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이 직업은 내 적성에 맞을까?

학원일을 관두고 공부만 할 수가 없었다.

부동산에 중개보조원으로 취업부터 해보기로 결심했다.

집 근처 부동산에 면접을 보러 갔다. 그때 나는 서른아홉 살이었다.

숙명여대 법학과 졸업 타이틀을 믿고 부동산 대표님께 당당하게 6시 퇴근하고 싶다고 했다.

돌아오는 답은 애들 더 키우고 일하라! 였다.. 그렇다.. 이게 현실이다.

부동산에선 법대 나온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저녁 늦게 오는 손님도 응대할 수 있는 직원,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직원을 원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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