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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울리 Slowly Feb 15. 2022

아이에게 가장 큰 선물, 엄마

너와 나의 순간들



기질적으로 감정에 민감하게 타고났기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을 잘 읽어 내곤 한다.

주위에 있는 사람을 늘 기쁘게 만들고 싶어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하지 못한 순간이 많았다.

누군가의 마음을 공감하고 격려하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이제는 늘 뒤로 밀려 있었던 나의 목소리를 좀 더 세심하게 듣고 있다.

 



 



육아를 하면서 생전 처음 경험하는 낯선 감정이 나를 찾아왔다. 엄마가 되면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은 자연적으로 생기는 줄 알았지만 오산이었다. 오히려 내 존재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혼란이 지속되었다. 제시간에 잠을 자거나 끼니를 챙기고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당연히 해왔던 것들을 제 때 할 수 없게 되었다. 몸의 균형을 잃으면서 마음의 균형도 쉽게 무너져 버렸다.



아이의 개월 수가 높아지는 만큼 부모의 수준도 함께 높아진다고 했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육아에 대한 이해도도 점차 높아졌고 교감도 전보다 강해 졌다. 하지만 중요한 무언가가 사라져 버린 기분은 여전했다. 불안과 두려움, 무기력함과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이라는 공간에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작은 존재와 보내는 시간은 철저히 고립된 시간이었다. 처음 들어선 낯선 골목은 더 길게 느껴지는 법. 나의 첫 육아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시간이었고 그저 이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 만을 바라며 하루를 채워 나갔다.



아이가 두 돌이 되어가던 때 거의 처음으로 자식을 낳아 키우는 재미를 조금 알 것 같았다. 표정도 좀 더 다양해지고 소리를 내는 빈도도 늘어났다. 이제야 뭔가 서로를 알아보고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아이가 예뻐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동시에 아이가 제 또래의 아이들과 다르게 말이 늦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기다리면 금세 할 수 있겠지 하는 바람과 다르게 야속한 시간만 흘렀다. 주변의 권유로 발달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전반적인 인지와 언어 발달이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센터에서는 발달장애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때 부모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꽤 오래 산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늘 잠이 오고 무기력 감에 힘들어했던 날들에 대한 실마리가 풀어지는 듯했다.  



이제 육아도 좀 익숙해지나 했는데 너무나 뜻밖의 일에 두렵고 참담한 마음까지 들었다. 아이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없으면 어떡하나.. 뭐가 잘못된 걸까? 이대로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 거지? 내 감정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동안 견뎌 온 내 고통에 뜨거운 물을 끼얹은 듯이 쓰리고 따가웠다. 누군가에게 공감과 격려도 얻고 싶었지만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남편 역시 아이의 일로 혼란스러워했고, 누가 먼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할 여유 없이 서로 냉담할 뿐이었다. 올여름, 나는 정말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두고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때 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을 노트에 써본 것이었다. 나는 부족하고 어설픈 초보 엄마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세상 누구보다 이 아이를 사랑한다는 확신도 있었다. 아이가 어떤 상황이라도 내가 엄마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는 끝까지 아이를 돕고 지지하는 존재로 살아갈 거라고 손끝에 힘을 주어 써내려 갔다. 두려움과 답답함으로 잠 못 이루는 시간이면 노트를 펴고 아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고백했다.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마음이 녹아내리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은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고.



내 고통스러운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낸 뒤에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바로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온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후스스로에게 더욱 잘하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다. 내가 휘청거리면 다른 구성원이 나의 자리를 메꿔야 하고 가족의 중심이 무너지게 되니까. 이제는 누군가의 인정과 격려를 기대하기보다 스스로를 더 자주 격려하려고 한다. 애썼다, 충분히 하고 있다고! 나의 노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내가 나를 아껴야지.


 




스스로 사랑할 줄 아는 엄마가,

배우자와 아이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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