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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울리 Slowly Feb 15. 2022

펜디가 내게 알려준 것

명품, 누리거나 휘둘리거나



좋은 소비가 있고 화근이 되는 소비가 있다.

돈 쓰고 마음 불편한 소비는 줄여야 하겠고, 내 처지에 맞게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우고 깨쳐야 한다.


 





사회초년생, 돈을 벌어도 늘 통장에 잔고가 없던 그때, 시내에 있는 로드샵에서 가방을 하나 샀다. 세로로 약간 길게 빠진 짙은 브라운색 가죽 가방이었는데 심플한 디자인이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데 그 가방이 애물단지가 된 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하루는 사무실에 방문한 외부 직원이 내 가방을 유심히 보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 이거 그거죠? 펜디?! 와 예쁘다.”


펜디가 뭐지? 하고 있는 찰나

나를 늘 냉소적으로 대하던 회사 선배 하나가 다가오며 “헛? 이거 펜디예요? 이거 엄청 비쌀 텐데” 하며 관심을 표현하는 게 아닌가.

당황한 내가 "아... 이거 그냥 시내 로드샵에서 산 건데.." 하며 말끝을 흐리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웃음을 참는 듯 급하게 화제를 전환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날 알게 되었다. 내가 산 제품이 명품을 베껴 만든 노브랜드 가방이었다는 것을. 그날부터였을까? 그전까지 알지도 못했던 브랜드의 가방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이. 단숨에 그녀들의 주목을 받게 만들었던 그 가방. 그걸 가지면 내 인생이 뭔가 달라져 있을 것 같은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시간이 지나 30대가 되었고 결혼도 했다.

평소 명품에 크게 관심이 없던 친구들도 결혼이라는 큰 이벤트를 전후로 해서 상대에게 명품을 선물하고, 선물 받는 모습은 익숙했다.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은 해외 명품을 면세가로 구입할 수 있는 신혼여행 찬스를 놓치지 않는데, 여력이 되지 않았던 나는 그 타이밍도 놓쳐 버렸다. 아쉬웠지만 '명품이 뭐 별건가, 그 돈이면 다른 선택지도 많은데..' 하며 자기 위안 삼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휴대폰으로 명품백을 아주 집요하게 찾아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도대체 명품의 매력이 뭐길래? 한참을 고민해 봤는데...

- 명품 매장 앞 대기 줄은 불황에도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 백화점 직원이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볍게 스하고 다른 손님에게 갈 때 그 아찔함.

- 결혼할 때 명품 하나쯤 안 주면 그건 찐 사랑은 아니잖아?(내 남편이다. 그리고 나도 안 줬다. 미안)

- 셀럽의 화보 속 자태를 보며, 저 가방만 있으면 나도 수지처럼 보일 것 같은 대담한 착각.

...'다 됐고! 나도 갖고 싶다'가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어쨌건 나도 좀 있어 보이고 싶었다.



지난여름 어느 날 결국 홀린 듯 펜디 가방을 결했다. 가방을 사러가는 날. 어찌나 설레었던지 종일 배도 고프지 않았다. 딱딱하고 무거운 박스를 어깨에 메고서 백화점을 괜히 한 바퀴 돌아봤다. 소주를 몇 잔 마신 듯 기분이 알딸딸했다.







나는 대체 어떤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가방을 갖고 나서 그 기분 좋음은 며칠도 채 가지 못했고, 격식을 갖춰 차려입고 나가야 할 일도 마땅히 없었다. 사실 명품의 가치를  모르고 다가 그것을 지속적으로 소비할 만한 여력 없기 때문에 오히려 버거운 기분마저 들었다.



돋보이고 싶은 마음은 결국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내 경우엔 그랬다.

출산 후 몸은 변했고, 일 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해왔나 모든 게 물거품 같았고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며 불안했다. 아이가 또래보다 발달이 느리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 홀린 듯 모바일 쇼핑에 심취했다. 가방이 아니라 이 초라한 기분을 없애 줄 무언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명품이 나를 다시 빛나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착각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변화는 결국 내 안에서 시작되야 한다. 본연의 것이 아닌 것으로 속을 채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오히려 갈증은 더 깊어졌다. 고가의 잘 만들어진 제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굳이 명품이 아니어도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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