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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울리 Slowly Feb 22. 2022

나는 왜 결혼식에서 거짓말을  했을까

잠시 방심하면 나타나는 허영심이란 놈



'내가 꿈꾸는 결혼식은 말이야...'

누구나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다.



작은 레스토랑을 대관하고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어릴 적 이야기부터 서로 사랑에 빠진 에피소드를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것.



또 하나는 우리 언니가 결혼할 때 그랬던 것처럼

주례 대신 아빠와 아버님의 축하와 격려를 청해 듣고, 살아가는 동안 간직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삶은 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남편과 결혼을 약속한 날은 2017년 3월이었고, 아빠는 암투병을 하게 된 지 10개월 만인 같은 해 1월에 우리 곁을 떠났다.



아빠를 보내고 남은 가족들은 간단한 요리를 할 여력도 잘 나지 않아 대부분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기쁜 날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만큼 지쳐 있었고, 슬픔은 컸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많은 돈과 시간, 에너지가 필요한데 관례대로 하는 것이 당시에는 더 수월했다.

그렇게 로망은 로망으로 남은 채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결국 아버님 친구분결혼식 주례를 맡아 주시기로 했다. 감사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 한편은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서운했다.

아버님의  친구분은 우리 두 사람에게 앞으로 서로 도와 잘 살라고 해주시며 각자의 직업을 물어 메모하셨다.



당시 나는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교직원은 아니었다. 결혼식이 예정된 날짜는 내가 소속된 회사와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었는데, 나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어물쩍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다시 정정하지 않았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캉 말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편의 지인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을까? 나는 조금이라도 조건 좋은 신부로 보이 원했던 것 같다.



결혼식날, 우리 두 사람의  앞날을 축하해 주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이 자리를 지켜 주었다.

주례사 부분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캐릭터보다는 직장과 학력 같은 외적 것들만 언급되었다.

떨려서였는지 찔려서였는지 그 부분 기억에 남았다.



시작부터 배경도 재능도 크게 내세울 것이 없었던 나는, 세상의 차별과 선긋기를 가장 두려워하고 싫어했다.

졸업한 학교가, 직업이나 연봉이 그 사람을 전부 나타내 주지 않는다고 단단히 믿어 왔는데, 나 자신의 이중성을 제대로 직면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 서로 사랑하게 된 에피소드, 삶에서 노력하고 있는 부분들처럼 좀 더 진실한 것들을 나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앞으론 사기 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더 당당하게 살아가 보겠습니다.'  

잠시 방심하면 빼꼼히 고개를 드는 그놈. 실제보다 더 그럴듯한 나로 보이고 싶은 그 마음. 허영심.

남들은 오래전에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평생 기억날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갈 날 동안,

적어도 자신에게만큼은 당당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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