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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울리 Slowly Sep 04. 2022

남편이 원래대로 돌아간 이유

 분명 다른 남자인데, 변한 건 아니란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다가 말했다.

"여보 요즘 개봉작 중에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박해일, 탕웨이가 주연한 '헤어질 결심'이랑~ 톰 크루즈나온'탑건 매버릭'말이야~~!

헤어질 결심은 벌써 울산 내에서 극장 상영이 끝났더라고, 이런 영화는 OTT로 볼 게 아니라 극장에서 봐야 하는데...!"



 안타까워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안 그래도~ 나도 자기 대구(본가) 갔을 때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볼까 하고 알아봤는데, 요즘 티켓값도 엄청 올랐던데? 인당 15,000원 정도? 그 정도 주고 보러 갈 것도 아닌 것 같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안 갔지만..." 

"엥? 우리가 극장 가서 영화 봤던 게 몇 년 전이야? 그동안 많이 오르긴 했는데...

그래도 가서 한편 보고 오지?

자기 돈 잘 벌잖아?!

영화비가 부담될 정도는 아닌데~ 뭐야~~"

약간의 야유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영화 관람료가 비싸다는 남편이 살짝 어색하다. 나에 비해 돈을 못 버는 사람도 아니고 영화 보는 걸 참 좋아했던 사람이다. 말을 덧붙이자면 남편은 가족들과 좋은 음식점에 가서 지불하는 비용이나 평소먹는 식재료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사람마다 가치 있 여기는 것각자 다르고, 흔쾌히 주머니를 열게 하는 대상도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문득, 무엇이 이 사람이 감성과 문화라는 가치에 주머니를 여는데 이토록 인색하게 만들었나 생각해 본다. 그렇게 된 중심에는 일(회사생활)과 현실(나와 아이)있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도 들었다.



결혼 후에 둘이 함께 극장 갔던 기억이 없다. 결혼 생활을 한 지 6년 정도 되었으니, 그동안 최소한의 문화생활조차 즐기지 못하고 살았구나 싶어 실소가 흘러나왔다. 연애할 때, 함께 본 영화를 안주삼아 대화 나눴었는데, 언제 부터인가 영화나 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고사하고 일상적 대화조차 사라져 가고 있다.

진심, 우리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아티스트 웨이의 작가 줄리아 캐머런 "침묵은 가장 높은 차원의 대화"라는 말을 했는데, 사실 이 말은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자신과의 대화에 해당되는 말이지 타인과의 대화에효하지 않은가. 제 아무리 관계나 감정에 섬세한 사람일지라도 대화와 표현 없이 마음을 읽어내기란 불가능 가깝다.



부부 관계에서도 수비와 공격수가 나뉜다. 그런데 수비만 한다고 게임이 되나? 언성을 높이거나 불만을 이야기하길 꺼리는 사람은 점잖고 감정적으로 절제력 있을지라도, 평소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자는 물론이고 자신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다.



성장 과정에서부터 조심성 있는 성격 덕분에(?) 크고 작은 실수를 거의 한적 없는 사람들이 팀에서 리더가 되었을 때, 타인의 실수에 대한 이해나 포용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스포츠 종목에서 금메달리스트가 선수로서는 최상의 성적을 냈다 하더라도 반드시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만 잘한다고 해서 세상이 돌아가는게 아니다.



배우자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야 말로 부부관계에 최상위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갈등이 생겼을 때 말발을 앞세워 자기주장을 강요하는 건 하수다. 부부관계에서 이기는 건 이기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대로 돌려받거나 혹은 그 이상을 되돌려 받기 때문이다. 서로 대화 스타일이 같을 수 없지만 어쨌든 대화하고 표현해야만, 멀고 먼 거리를 좁힐 수 있다는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지와 사랑 1930)  

헤르만 헤세 



"해와 달이, 바다와 육지가 서로 가까워질 수 없듯이,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어. 우리 두 사람은 해와 달, 바다와 육지처럼 떨어져 있단 말이야. 우리의 목표는 상대방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거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존중해야 한단 말이야. 그리하여 서로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두 사람은 각각 지성과 감성, 종교와 예술, 학문과 자연으로 대립되는 세계를 살아간다. 그러나 서로 정반대의 삶을 가는 중에도 사랑과 우정은 지속되고, 결국 진리라는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나와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끌렸는지 모른다. 내가 사랑했던 그의 의연함과 이성적 판단력 이제는 메마르고 차갑고 기계적으로 느껴진다며 몰아세우는 나도 그에겐 매우 낯설게 느껴질 거다. 변한 건 나인가 그인가. 진정, 우리는 각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일까. 너무 가깝지 않아 서로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아예 무관심하거나 멀어지지도 않는 그런 우주적 관점을 배워야 할 때가 왔다. 

함께 잘 나이들어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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