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울리 Slowly Aug 17. 2022

"엄마가 재미있어요."

존재 그대로 사랑하는 연습



아침에 서울 사는 지인에게서 톡이 왔다. "거기 지금 비 와? 강수도 보다가 생각났어", 내가 답했다.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인데 아직 내리지는 않네?" 멀리 보이는 해안가에 해무가 뿌옇게 껴있다. 공기 가득 머금은 수분이 눈에 보이는 듯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잠시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열어두었는데 내딛는 걸음마다 '쩍'소리를 내며 바닥바닥에 달라붙었다. 톡으로 짧은 대화를 나눈 지 30분 채 지나지 않아서 천둥소리와 함께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아이와 베란다 문을 열고 비 구경을 했다. 떨어지는 빗물이 반가운지 아이는 밖으로 손을 뻗어 비를 만져보았다. 사물이 분간되지 않을 만큼 굵은 빗줄기가 사정없이 내리쳤지만 다행히도 짧은 시간 안에 잦아들었다. 어린이집 갈 준비를 마치고 등원하기 위해 차에 탔는데, 아이가 "공룡 발짝 보러 갈래?"(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는 말이다. 밖에서 놀고 싶다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한다. 내가 "선생님하고 친구들 만나러 가야지? 어린이집 가야지!" 했다. 우물쭈물거리다 다시 한번 아이에게 물어봤다. "대왕암 공원에 용가리 보러 갈까?" 아이가 눈을 크게 뜨며 말한다. "그래! 좋아! 대왕 용가리 보러 가자!" 아이의 기분이 좋지 않거나 혹은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한다고 해서 매번 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오늘은 어린이집 대신 자연학습을 택했다. 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야외로 나갈 채하고 금세 다시 집을 나섰다. 마침 일도 없는 날이었고, 무엇보다 오늘처럼  오는 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어제는 종일 아이와 집안에 머물면서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제대로 눈조차 마주치지 않은 미안함을 빗물에 씻어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그렇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이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축축하고 시야도 좁아지고 옷과 신발이 젖는 성가심 보다는 대지를 씻어 주고 생명을 키우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날로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살다 보면 갑자기 예기치 못한 인생의 폭우를 만날 때가 있다. 아무리 중요한  계획 무용지물이 되고 그저 홀딱 젖는 것 밖에 딱히 방법 없는 날. 하지만 그런 날조차 내 삶에 꼭 필요한 날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좋겠다. 비가 오면 일상의 풍경이 달라진다. 비에 젖은 땅과 나무, 오목한 곳에 고인 빗물의 모양은 제각기 아름다웠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비 젖은 땅을 밞는 아이의 호기심 어 걸음걸음을 따라 걸으며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때때로 소리를 지르고, 귀찮아하고, 늘 피곤해하며 인내심이 부족하지만,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거라고. 너의 존재 그대로 사랑하겠다고.



이른 저녁시간 아이가 품에 안겨오며 내게 말해주었다.

"엄마, 안아줘요.", "엄마가 재미있어요."

...


너와 함께 비를 맞을 수 있어서 엄마도 행복했어.

고마워.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이 원래대로 돌아간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