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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울리 Slowly Jan 27. 2023

부부는 서로 닮아가는 것일까?

부부관계 연구



 관계는 매 순간 새롭게 창조된다.





오래된 부부는 서로 외모가 닮아간다는 연구가 있었다. 1987년 미시간대 심리학자인 로버트 자이언스 교수와 연구진은 커플 12쌍을 대상으로 결혼 25년 후 외모 변화를 분석했다. 부부는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식단을 유지하며 습관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점과,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표정을 모방하기 때문에 표정이나 모습이 닮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 연구의 분석대상이 너무 작았던 점과 과학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연구방법의 한계점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연구가 진행되었다. 스탠퍼드대학의 마이클 코신스키 교수 연구팀은 20년 이상 함께한 부부 517쌍의 사진을 최신 안면인식 알고리즘을 이용해 분석했다. 좀 더 면밀한 판정을 위해 150여 명의 판정단이 추가로 분석에 참여했다. 그 결과 "오랜 부부가 닮았다는 사실 자체는 사실이나 살면서 서로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외형이 닮은 사람이 부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더 끌린다. 외모, 종교, 교육 수준 등이 비슷할수록 관계가 만족스럽고 심리적 안정을 느낀다는 연구도 있다. 자신과 닮은 가족과 있을 때 익숙함과 호감을 가지듯 얼굴만 봐도 비슷한 유전인자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는 거다.



남편과 나는 닮은 구석이 있다. 잘 나간다고 너무 뻐길 필요 없고 반대로 내세울 것이 없다고 해서 너무 기죽을 필요 없다고 여기는 점이 그렇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유통기한과 성분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 같이 사소한 것들이다. 우리는 대학 다닐 때 교양 수업에서 만나 친구로 지내다 오랜 뒤에 연인으로 발전했다. 하루는 남자친구였던 그를 집에 초대해 가족들과 맥주 한잔 마셨던 적이 있는데 남자친구가 돌아간 뒤에 아빠가 나와 똑 닮았다며 흐뭇하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꼭 눈, 코, 입 같은 이목구비가 닮았다기보다는 이미지와 기질이 아빠 눈에 비슷해 보였던 것 같다.



결혼해서 한 집에 살아보니 굳이 따져 본다면 비슷한 것도 많지만 다른 점은 훨씬 더 많다. 사소한 습관이나 기질 등 타고난 성향이 다를 뿐 아니라 다른 가정에서 나고 자라 30년 이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으니 말이다. 특히 감정 표현 방식은 서로 정말 다른 편이다. 연애할 때 서로 잘 맞다고 느꼈던 것은 당시에 도파민이 제 역할을 잘해준 덕분일 것이고, 상대에게만 안테나를 세우고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편이 뿔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차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다. 벨트가 덜 말려들어갔는데 문을 닫아버린다거나 얼마 전에 왼쪽 앞범퍼에 난 스크래치도 내가 한 일로 의심받고 있는 듯하다. 만일 내가 긁었다면 자백하지 않고는 편히 잠 못 자는 성격이라 벌써 고백했을 거다. 함께 외출하기 위해 차에 타고 시동을 걸던 남편이 날씨가 추울 때는 웬만하면 시동을 최소 3분 이상 걸어두고 그 이후에 움직이라고 알려준다.



"여보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요즘 차는 성능이 좋아져서 시동 걸고 예열하지 않아도 문제없다던데?" 라며 '카더라 통신'으로 대응했다. 아내와의 소통은 어려워 하지만 기계와의 소통은 꽤 능숙한 남편이 오늘은 대충 넘어가지 않으려나 보다. 숨을 한번 가다듬더니 눈높이 교육에 나선다.



"자 생각해 봐.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데 어떤 전희나 애무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어떨 거 같아? 차도 같아. 물론 동 걸고 운행하면 굴러는 가겠지만 기온이 떨어져 있을 때는 바로 움직이면 마찰로 인해서 마모되기 쉽다고"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뜻밖의 비유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멋쩍기도 해서 얼굴이 살짝 뜨거워진 나는 "그, 그래.. 인정! 그렇겠네. 비유가 있으니 알아듣기 쉽네!" 남편의 말에 수긍하는듯한 전술을 선택한다. 한편 감정 소통을 가장 어려워하는 남편이 기계 컨디션은 단박에 알아차리고 이토록 민감한 것에 새삼 놀랐다. 아이를 출산했을 때도 별 다른 감정 동요가 없어 보였던 그였다. "수고했어, 힘들었지?"라는 말만 나지막이 반복 출력하는 남편을 보며 인공지능 로봇 같다고 생각했었다. 아내의 감정은 잘 읽어내지 못하면서 차와 공기청정기, 세탁기를 대할 때는 이렇게 진심이라니! 마음 한편이 울컥해 온다.




답답한 사람이 노력하게 되는 게 소통의 속성 아닐까. 오랜 시간을 함께 살며 서로를 닮아가느냐, 닮은 사람이 서로에게 더 끌려 결혼하게 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요구의 기술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먼저 알아차려야 하고, 상대가 알아차릴 수 있게 명확히 요구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줄리아로버츠가 주연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로또에 당첨되고 싶다면 제발 로또를 먼저 사라!" 상대가 내 마음을 알겠지, 함께 산 시간이 얼만데 하는 생각은 지극히 내 생각일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안다고 착각하기 쉽다.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번복하지 않는 성의를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다. 상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어린 행동은 두 사람이 주파수를 맞출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소중한 것에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던가. 관계도 공짜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한 이불을 덮어도 남보다 멀어질 수 있는 게 부부관계라지만 꺼진 불도 다시 보자. 관계는 매 순간 새롭게 창조된다. 













photo by  Irina Nedyalk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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