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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울리 Slowly Jan 25. 2023

손주에게 독설 하는 할머니의 심정은



세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누나를 하원하러 어린이집에 온 할머니는 화가 나있었다. 할머니는 세 살 아이보다는 좀 더 커서 사리 분별을 할 것 같은 누나에게 역정을 내며 말한다.



"너는 그렇게 마음대로 할 거면 집에 오지 마라. 그냥 어린이 집에 살아라"

"말을 들어먹어야 말이지 나더러 어쩌라고 저리 지마음대로 하고"



큰 아이는 입이 삐죽 나온 채 신발장 쪽을 서성이며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못한 채 다른 아이들의 신발을 응시하고 서있다. 할머니는 동생의 신발을 신겨주며 한숨과 화를 멈추지 않는다. 곁에서 아이 신발을 신겨주고 있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눈치를 보며 쩔쩔맨다. 할머니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요즘 엄마들 기준으로는 폭언이었다. 미디어에 나오는 아동심리 박사들이 들었으면 바로 지적당했을 법한 말들. 아이를 협박하기도 하고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말들이었다.






출처 freepik




내가 만나온 대부분의 조부모들은 손주를 애지중지했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다고 했으며,
자식 키울 때는 먹고사는 일로 바빠 지나쳤던 애틋한 사랑을
손주에게 더 많이 느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원래 화가 많은 사람인 것일까. 아니면 체력이 달리고 힘겨워 마음에 없는 말들을 푸념처럼 쏟아 내고 있는 것일까. 아이를 낳고 키워보기 전에는 굳이 이해나 공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일들이 있다. 아마 어린이집 하원할 때 화가 난 할머니의 속마음이 들여다 보일 일도 없었겠지 싶다. 카페 공공장소에 아이가 와서 뜬금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장난을 칠 때 부모는 뭘 하고 있는지 힐끔 쳐다보기도 했다. 반대로 공공장소에서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는 부모를 보면서 교양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내가 종종 그런 눈빛을 받고 고개를 숙이며 눈빛으로 양해를 구하게 되었다.  



소중한 아이에게 수시로 화가 나고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 건 대체로 많이 지쳐 있거나 체력이 달릴 때다. 할머니는 오늘따라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손주들이 야속했을 거다. 서른 중반의 아이 하나 키우는 엄마에게도 등하원 하는 일은 때때로 버겁다. 양가 부모님이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셔서 어린이집 등하원을 도맡아 해주는 가정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했다. 몸이 아프거나 오전 일찍 일정이 잡혔을 때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때때로 지친 기색이 역력한 조부모님들의 표정과 마주칠 때면 내 아이를 스스로 돌볼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느낀다. 오늘도 콩나물처럼 성장하는 어린 인간의 쟁쟁한 체력과 맞서 투쟁하고 있을 모든 이들의 기쁨과 슬픔에 따끈한 격려를 전하고 싶다.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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