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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인더 Feb 16. 2023

관심은 강력한 약효가 있다

우리 동네 비뇨기과 '화타' 선생님 이야기

비뇨기과 탐방기

동네에 화타가 있었다!


만성 방광염에 걸렸다. 출산 후에 처음 경험한 방광염이 최근 2년 동안 정말 감기처럼 빈번히 찾아왔다. 증상이 오면 주로 산부인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보통 3~5일 정도 항생제를 먹으면 완치되는 증상이 한 번은 한 달 반 넘게 지속되었다. 의사는 항생제 내성이 생긴 것 같다며 종류가 다른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고 두 달 가까이나 끌다가 겨우 증상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꽈추형의(비뇨기과 의사) 강의를 보게 되면서 아! 방광은 비뇨기과에서 진료를 받는 게 더 정확하겠구나! 깨달음(?)을 얻었고 앞으로는 산부인과가 아닌 비뇨기과에 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에 한동안 잠잠했던 익숙한 통증이 또다시 찾아왔다.      


집과 가까운 비뇨기과 의원을 찾아갔는데 도착해 보니 오후 진료만 하는 날이었다. 소변을 참기 어려운 통증과 혈뇨를 동반하는 증상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약을 처방받고 싶었고,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여 동네에  영업 중인비뇨기과 의원 한 곳을 더 찾아냈다. 앞서 검색한 곳과는 달리 이곳은 별다른 리뷰가 없었고 그냥 가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아주 오래된 상가의 2층에 위치한 병원 입구로 들어서는데 마치 한 30년 전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래된 시골 약방 분위기의 접수창구에는 원장님 사모님으로 보이는 분과 60대 중반 이상으로 보이는 간호사 한 분이 앉아 있었다. 어벙해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병원 내부를 연신 둘러보며 나도 모르게 하! 하고 감탄사를 내뱉고 있던 참이었다.


내 차례 바로 전에 접수한 한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나오시며 “수도가 얼었네. 물이 안 나와” 하셨다.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수도가 얼어버린 것이다. 순간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증상만 듣고 약 처방을 해주실지 소변검사를 진행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눈으로 주변을 더 빠르게 스캔하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오전 일찍 방문한 편이라 대기자가 많지 않았다. 내 앞에는 두 명 정도 진료를 보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한번 진료실에 들어가면 도통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꽤 오래 진료를 보고 나오는 것이었다. “병원은 허름한데 선생님이 정성껏 봐주시나 보다.” 생각하며 티브이에 가눌길 없는 시선을 고정한 채 순서를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진료실로 들어가자 70대로 추정되는 의사 선생님이 콧등에 걸린 안경을 찡긋하며 내 쪽을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었다.           


“어떻게 왔는가?”

“저기 저 소변을 봐도 시원하지 않고, 배도 찌릿찌릿 아프고요. 방광염이 온 것 같아서요.”

“언제부터 그랬는가?”

“아! 새벽부터 아파서 바로 왔어요.”

“음 결혼은 했는가?”

“저요? 아, 네 결혼했어요.”

“애기는 있고?”

“네 출산했어요. 하나 있어요.”

“혹시 유산한 경험은?”

“아뇨. 유산 경험은 없어요.”

“알았네, 그럼 소변 좀 받아서 와보라고”


선생님의 질문들이 생소하면서도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보통 내가 가던 병원에서는 언제부터 증상이 있었는지만 물어보고는 바로 약을 처방해 주었고 별다른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없다. 사모님인지 간호사인지 헷갈리는 분에게로 가서 “소변검사요.” 하니 컵을 하나 주셨다.


“지금 화장실이 얼어서 물이 안 나오니까 쪼금만 받아 와요.”라며 컵을 건네주시는데, 눈치 없는 내 웃음 버튼에 시동이 걸렸다. (소변을 조금만 받고 끊을 수 있나??그게 가능해??)

“네” 하고 대답해 놓고선 혼자 이를 꽉 깨물었다.       


소변컵을 갖다 드린 뒤에 내 이름이 한 번 더 불렸다. 진료실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의사 선생님이 책상 위에 놓인 현미경으로 유리판을 확대해서 들여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광경은 방광염 인생 2년 차 만에 처음이었다. 원래 소변 검사를 저렇게 하는 건가? 내 정신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에구! 염증이 있네”

“아핳. 염증이 있어요?”

“여성 질 안은 자연적으로 균 덩어리야. 정글, 밀림 같은 거라고 보면 돼. 우리 위장처럼 산도가 4.5도 정도 유지가 돼야 되는데 비누로 너무 자주 씻어도 안돼. 자연 그대로 유지해 둬야지. 질속에 있는 자기 균이 요도로 올라와서 방광염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 뒤에서 앞으로 올라오면 안 돼”

“아, 네...”

“그리고 이건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 결혼도 했으니까 말이야” 하며 눈을 맞추신다.

“아 부부관계 할 때 말씀이죠?”

“그래~ 남편하고 만날 때도 무조건 균이 들어와. 그런데 적은 양이라 이후에 소변을 보면 웬만하면 씻겨나가. 간혹 남편 하고 만나기만 했다 하면 방광염이 걸리는 사람이 있어. 그걸 보고 길이 났다 그래. 그 길을 없애려면 6개월쯤 걸려”

“그런 경우면 어떻게 하죠?”

“일단 오늘부터 토요일까지 삼 일간 매일 나와서 주사를 맞고, 월요일에 다시 검사해 보자고”

“그리고 그 이후에는 내가 예방약을 지어 줄게. 때 되면 나와서 타가면 된다고”

“예방약이요? 그런 게 있어요?”

“있지~ 이건 우리나라에서 몇 명 밖에는 몰라~ 아무나 이야기 안 해줘!”

“아.. 예.. 그럼 예방약도 지어 주세요.”

“알겠네! 자! 이제 주사 맞으러 가”

“네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책상 뒤쪽에 마련된 주사실은 커튼 한 장이 쳐져 있어 한 방이나 다름 없었다. 주사를 맞고 있는데 아줌마 한 분이 또 진료를 보러 들어오셨고,      

“선생님예 ~ 아고 마 내 부끄러운데~ 지가 아래가 왜 이래 간지럽지요?

그래가 마 소금물로 막 씻고 그리고 왔어요~”

“에헤이! 그러지 말라니까~~ 참 내~~”

찰떡같은 톤으로 맞대응을 해주시는 선생님의 노련함에 한 번 놀라고, 대놓고 본인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말하는 아줌마의 익살스러운 목소리에 또 한번 놀라며 그만 주삿바늘이 찔린 채로 두 번째 웃음 참기 챌린지 상황이 온것이다.


힘없고 몸이 아픈 와중에 자꾸 웃음이 새 나와 풀린 다리를 겨우 이끌고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내가 지불한 진료비 5,600원 보다 상당히 많은(?) 혜택을 얻고 돌아온 것 같은 마음에 왠지 뿌듯했다.

 

삼일 뒤에 방문한 결과 정말 염증이 잡혔다.

“아이고 또 왔구먼, 어디 보자 주말 쉬었으니 얼굴 한번 더 들여다봐야지!” 하시는 의사 선생님의 관심 어린 말 한마디에 온정이 느껴졌다. 아직 사후 관리가 좀 더 남아 있긴 하지만, 요즘 세상 같지 않은 이 병원에는 플라시보 효과처럼 신비한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이번엔 정말 완치될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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