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하고 젖은 수건을 빨래 걸이에 걸어둬서 빨아둔 옷들과 섞였을 때 (약간 열받은 톤으로)
주말에 외출할 때 나름 공들여 화장을 하고 있으면, 좀 서두르지? 하는 말 대신에
강의가 취소돼서 내 어깨가 한껏 처져 있을 땐, 짠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훑어보면서
어제는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쾌청한 봄날이 펼쳐졌다.
기분이 들뜬 내 모습을 보더니 콧웃음 치며 또 익숙한 그 말을 한다.
‘아줌마?’
기분이 좋을 때 들으면 남편의 애칭인가 싶다가도
감정이 의기소침할 때 들으면 퍽이나 열이 받는다.
나라는 개별의 존재가 아줌마로 뭉뚱그려지는 게 왠지 속상하다.
“나 아줌마 아니라니까?”
“차라리 미스킴이라고 불러!” 발악해 본다.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
결혼도 했고, 아이까지 있는 빼박 아줌마인데
아직 아줌마라는 정체성의 언저리쯤에서 어물쩍거리고 있다.
얼마 전 몸담고 있는 강의, 교육분야 외의 새로운 분야에서 협업할 기회를 얻어 미팅을 하게 되었다. 예술, 전시 분야 전문가이자 멋진 인생선배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설레었고, 뭐라도 내가 함께 할 일이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리해 보내주신 과업 청사진을 보니,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일과 그쪽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의 갭이 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제안해 주셨던 감독님께 일을 맡을 수 없는 이유를 메일로 작성해 보내는데, 기대를 저버린 것 같아 자괴감이 밀려왔다. 일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주어진 일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고, 왜 이토록 일머리나 역량이 부족한가 스스로에게 답답했다.
새벽에 눈 뜨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한 줄 또 한 줄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고, 적임자를 만나일이 더욱 원활하게 잘 진행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같은 날, 점심시간이 되기 조금 전에 감독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메일은 잘 읽어 봤다고 했다. 아쉽게 되었다고, 그런데 예술제 개막식 사회를 맡아주면 어떻겠냐고 했다. 다른 협업 할 거리도 찾아보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올레! 이런 날도 있구나! 예전에 건강 문제로 일 제안을 거절했다가,블랙리스트에 올라 그 기관에 다시 강의를 나갈 수 없도록 만든 어른도 있었다.) 자책할 필요 없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내게 더 적합한 일이 주어진 것이다.
잘 거절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서로에게 이로울 때가 있다. 다만 친절하고 진실하게. 시도가 많으면 거절당하는 일도 많다. 속상해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이 있는 동물이다 보니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스스로에게 위장술을 처방한다. 작전명은 ‘성난 가재처럼!’ 말린 어깨는 활짝 펴고, 배는 집어넣는다. 가슴은 열고, 오히려 더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마치, 나 엄청 매력 있는 사람이에요! 어쩔 건데? 하는 것처럼. 사람의 뇌는 상상과 실제를 잘 구별해내지 못한다고 했다. 새콤한 레몬을 상상하면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처럼. 팬티 입은 코끼리를 상상하지 마시오! 하면 그놈의 코끼리가 눈앞에 더 선명히 그려지는 것처럼.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긍정확언으로 정신을 무장하는 방법이다. 그러다 저러다 보면, 거짓말처럼 또다시 좋은 날, 좋은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