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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인더 Mar 29. 2023

자신감이 필요할 땐 성난 가재처럼

자세가 기분을 바꾼다




남편은 이럴 때 나를 ‘아줌마’라고 부른다.

사용하고 젖은 수건을 빨래 걸이에 걸어둬서 빨아둔 옷들과 섞였을 때 (약간 열받은 톤으로)

주말에 외출할 때 나름 공들여 화장을 하고 있으면, 좀 서두르지? 하는 말 대신에

강의가 취소돼서 내 어깨가 한껏 처져 있을 땐, 짠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훑어보면서

어제는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쾌청한 봄날이 펼쳐졌다.

기분이 들뜬 내 모습을 보더니 콧웃음 치며 또 익숙한 그 말을 한다.

 ‘아줌마?’




기분이 좋을 때 들으면 남편의 애칭인가 싶다가도

감정이 의기소침할 때 들으면 퍽이나 열이 받는다.

나라는 개별의 존재가 아줌마로 뭉뚱그려지는 게 왠지 속상하다.

“나 아줌마 아니라니까?”

“차라리 미스킴이라고 불러!” 발악해 본다.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

결혼도 했고, 아이까지 있는 빼박 아줌마인데

아직 아줌마라는 정체성의 언저리쯤에서 어물쩍거리고 있다.







얼마 전 몸담고 있는 강의, 교육분야 외의 새로운 분야에서 협업할 기회를 얻어 미팅을 하게 되었다. 예술, 전시 분야 전문가이자 멋진 인생선배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설레었고, 뭐라도 내가 함께 할 일이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리해 보내주신 과업 청사진을 보니,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일과 그쪽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의 갭이 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제안해 주셨던 감독님께 일을 맡을 수 없는 이유를 메일로 작성해 보내는데, 기대를 저버린 것 같아 자괴감이 밀려왔다. 일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주어진 일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고, 왜 이토록 일머리나 역량이 부족한가 스스로에게 답답했다.




새벽에 눈 뜨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한 줄 또 한 줄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고, 적임자를 만나 일이 더욱 원활하게 잘 진행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같은 날, 점심시간이 되기 조금 전에 감독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메일은 잘 읽어 봤다고 했다. 아쉽게 되었다고, 그런데 예술제 개막식 사회를 맡아주면 어떻겠냐고 했다. 다른 협업 할 거리도 찾아보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올레! 이런 날도 있구나! 예전에 건강 문제로 일 제안을 거절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그 기관에 다시 강의를 나갈 수 없도록 만든 어른도 있었다.) 자책할 필요 없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내게 더 적합한 일이 주어진 것이다.




거절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서로에게 이로울 때가 있다. 다만 친절하고 진실하게. 시도가 많으면 거절당하는 일도 많다. 속상해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이 있는 동물이다 보니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스스로에게 위장술을 처방한다. 작전명은  ‘성난 가재처럼!’ 말린 어깨는 활짝 펴고, 배는 집어넣는다. 가슴은 열고, 오히려 더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마치, 나 엄청 매력 있는 사람이에요! 어쩔 건데? 하는 것처럼. 사람의 뇌는 상상과 실제를 잘 구별해내지 못한다고 했다. 새콤한 레몬을 상상하면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처럼. 팬티 입은 코끼리를 상상하지 마시오! 하면 그놈의 코끼리가 눈앞에 더 선명히 그려지는 것처럼.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긍정확언으로 정신을 무장하는 방법이다. 그러다 저러다 보면, 거짓말처럼 또다시 좋은 날, 좋은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난 아줌니가 아니다! 성난 가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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