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나는 외모도 정서 발달도 조숙했던 아이였다. 그 당시 내 머릿속에는 이성, 사랑, 관계, 성과 같은 주제가 주를 이뤘다. 학교 도서관에 가서 존그레이 등(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로 유명한 미국의 부부상담 전문가) 저서들을 10권 가까이나 읽었고, 동네 책방에서 야한 만화책을 처음 접한 것도 그때였다. 내가 서른을 지나오며 사는 일과 죽는 일에 빠져있듯 당시에는 남녀의 서로 다른 심리, 사랑과 관계가 학교 공부보다는 백배 재미있었다. 학교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나가는 곳이었고 공부는 양극화가 심했다.
나는 여중에 다녔다. 중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전학을 왔던 나는 동네에 친구가 많지는 않았다.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내 단짝 친구에게 제안을 했다. 제안의 내용은 너의 초등학교 남자 친구들을 소개해줘! 뭐 이런 것이었다. 친구가 졸업한 초등학교에는 여자 아이들에게 매너가 좋아 인기가 있었던 한 아이가 있었는데, 정말 심사숙고 끝에 찾아냈다. 대담하게도 졸업장 맨 뒤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와 방과 후에 친구들과 함께 만날 약속까지 정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이런 뻔뻔함이 있었다.
우리들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자 둘 여자 셋이 나갔던 것 같다. 실제로 만남은 예상한 대로(?) 어색하고 할 말이 없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이성적 케미가 없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이성보다는 농구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 이후로도 우리들은 학원에서 만나기도 하고 동네에서 삼삼오오 만나 학교 이야기, 이성이야기, 부모님이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렇게 동네 친구가 되어 중학교 시절을 함께 지나왔다. 각자 다른 고등학교에 올라가며 만남은 뜸해졌지만 우리는 일 년에 두어 번은 전화 통화를 했고, SNS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확인하고 코멘트를 남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 정비나 튜닝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했었고 언젠가 자동차 강국인 독일에도 가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인문계가 아닌 공업 고등학교를 선택한 친구는 졸업한 뒤에 대학교 진학 대신에 직관에 따라 일찍 자동차 정비 일을 시작했다. 대학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공부에 흥미가 없어도 일단 너도 나도 다 대학을 가던 분위기였다. 그 안에서 자신의 길로 소신 있게 들어선 친구가 나는 자랑스러웠다. 도제식인 자동차 정비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월급 20만 원으로 시작한 친구는 서른이 다가올 때쯤엔 동네 친구들 중에 돈도 가장 잘 벌었다. 그는 허영이 없고 검소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고 옳다고 믿는 일에 대해서는 굽히지 않는 고집이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우리는 각자 어른이 되는 법을 찾느라 바쁘게 살아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들은 서로의 형편이나 하고 있는 일의 크고 작은 실패와 성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년간 거의 만나지 못했지만 연락은 끊어지지 않았다. 나는 강사가 되어 일했고 진로 교육을 할 때 학생들 앞에 서게 되면 종종 그 친구의 삶을 인용했다. 우리는 각자가 하는 일을 존중했고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 친구와는 늘 이렇게 연결되어 살아갈 거란걸 막연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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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 돌아와 한숨 돌리려는 찰나 친구 진이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야 세민아, 혹시나 해서... 너 훈이 카카오 프로필 봤어?
어? 갑자기 프로필이 왜? 아무것도 없는데?
아니 프로필에 뭐 장례식 이야기가 적혀 있어서
어?! 훈이 부모님 중에 누가 돌아가셨나??
아닌 거 같아... 훈인 거 같아
어... (그럴 리 없겠지만...) 잠시만 내가 확인해 볼게
나는 걸려온 전화를 끊자마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지 않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여보세요~”한다. 거봐라. 역시 그럴 리 없었다. 진이가 착각해서 생긴 에피소드였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야! 훈아!”
전화기 너머 상대가 주춤했다.
“어... 세민아 나 훈이가 아니고...”
전화를 받은 사람은 훈이와 가장 친했던 또 다른 친구였다. 그 순간 가슴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가슴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전화기를 붙잡고 소리 내 울었다.
2020년 12월 3일, 내 친구가 교통사고로 먼저 떠났다. 내 결혼식에 와준 친구의 모습이 우리의 마지막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내년에 결혼 날짜가 정해지면 알려준다고 했다.누구보다 친구의 좋은 날을 환하게 축하해 주고 싶었다. 그 훤칠한 모습을 장례식장 국화꽃 사이에 놓인 사진으로 보게 될 줄 몰랐다.
오는 건 순서가 있어도 가는데 순서가 없다는 그 흔한 말을 굳이 내 친구가 증명하게 되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나에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던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죽음에 대해 공부해 나가는 것뿐이다. 그래야 슬픔을 넘어서고 삶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오늘 내게 주워진 하루가 얼마나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인지 잊지 않게 되는 것이다.
미디어에서, 의학자들도 모두 100세 시대라고들 하니 착각하기 쉽다. 당연히 우리 부모님도 80대 까지는 거뜬히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머물러 있다가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1년도 넘기지 못한 채 돌아가신 아빠를 보면서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죽음은 가변적이다.나이를 가리지 않고 예측하기 어려운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나와 내 가족 또한 언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가능한 단정하게 꾸려 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