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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마인더 Dec 05. 2023

"장례식 같은 건 간단해. 소풍 같은 거지 뭐"

노르웨이숲 무라카미하루키



무라카미하루키의 글을 많이 읽은 건 아니다. 고작 두 세권 봤을 뿐이다. 노르웨이숲은(상실의 시대) 학생 때 읽었고 최근에 다시 한번 읽었다. 그 당시엔 좀 야한 소설이라고 느껴졌다. 십여 년이 흐른 지금에는 그 야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애틋함으로 다가온다. 살면서 만나는 인연들은 모두 유통기한이 있다. 더 길게 보면 생이라는 이 여정 자체가 유통기한이 있는 것이다. 어느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언제까지나 계속 올 것 같은 아침도 이 하루도 끝은 온다. 그래서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는 감정 자체가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와타나베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은 책 아래 모서리를 슬쩍 접어두고 싶을 정도로 신선했다. 이토록 이질감 없이 사랑의 느낌을 글로 표현해 낼 수 있다니. 그의 교감을 따라가다 보면 얼마동안 알았던 관계건 얼마의 나이차가 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아무런 의심이나 판단 없이 그 관계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난 대 여섯 페이지의 모서리를 접어뒀다. 언제가 다시 읽고 싶어 질 것 같아서.



죽음은 가깝지만 매우 멀리 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열었던 존재의 죽음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를 열었던, 세상에 몇 안 되는 존재가 삶에서 아주 사라진다는 것은 숨 막히게 버거운 일이다. 무라카미하루키는 사랑과(삶) 상실(죽음)을 버무려 생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냈다.

우리는 죽음을 피하고 외면하기에 바쁘지만, 어쩌면 죽음은 삶보다 더 가벼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우리는 삶 너머의 세상을 알 수 없기에 오늘 이 하루도 살아내야 하지 않겠나.




"많이 힘들었지? 장례식이나 여러 가지 일들로..."
"장례식 같은 건 간단해. 나한테는 익숙하니까. 하루하루 간병으로 고생하는데 비하면 소풍 같지 뭐 너무 지쳐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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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은 내게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진흙탕과도 같았다.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신발이 쑥 빠져버릴 것 같은 깊고, 무겁고, 끈적이는 수렁. 그 진흙탕 속에서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걸어갔다. 앞에도 뒤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끝도 없이 시커먼 진흙탕 길이 이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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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얼굴도 들지 않고 하루하루를 흘려보낼 따름이었다. 내 눈에 비친 것은 무한히 이어지는 수렁뿐이었다. 오른발을 들어 올리고 외발을 들어 올리고 다시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확신도 없었다. 다만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으니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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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은 자와 함께 살았다. 죽음이란 삶을 구성하는 요인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는 죽음을 머금은 채 거기서 살아갔다.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있다.' 그것은 분명히 진실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키워가는 것이다. 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었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에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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