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감사할 것
모르는 남자가 집에 찾아왔다
평온했던 이른 저녁
안전하다고 믿었던 엄마의 아파트에서
엄마와 나 그리고 여섯 살 아이가 쉬고 있었다.
누군가 벨을 눌렀다.
모니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여는 순간
비상구 계단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민 남자는 열린 문틈으로 엄마 얼굴을 확인하고 달려들었다.
짐승과 같았다.
집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 거다.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사고가 났음을 알았다.
집 안에는 엄마와 나 그리고 아이뿐이었다.
이렇게 모든 게 끝 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바지도 입지 못한 채 맨다리로 달려 나갔다.
남자의 모습이 바로 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현관문을 잡고 양쪽에서 대치했다.
문 틈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정강이 부분을 발로 몇 차례나 밀어냈고
동시에 문을 끌어 닫을 수 있었다.
살고 싶은 욕망이 아드레날린을 뿜어댔다.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아파트 관리실과 경찰에 신고를 했다.
같은 동 한참 위층에 혼자 사는 남자로,
술을 많이 마셔 인사불성이라고 했다.
우리 삶은 매우 견고한 듯 하지만
순간, 부서지기 쉽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일이라더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트라우마나 흉터로 남을지,
액땜한 것인지,
전화위복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삶은 때로 예측을 벗어난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모든 것에 감사하는 일뿐이다.
그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