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집을 비웠던 적은 많았다. 여행 갈 때나 명절에, 생업을 위해 거의 매일 같이 대문을 나서기도 한다. 집을 비울 땐 늘 다시 돌아온다는 전제가 있었다. 잠시 나갔다 돌아오는 거다. 하지만 죽음은 달랐다. 지금 나가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 얼마 동안 정든 집이든, 가족들이 아무리 기다린다고 해도 말이다.
우리가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시 만난다는 기약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존재와 영원한 이별은 내 몸의 일부를도려내는 듯 고통스러웠다. 산 지옥이라고 여겨질 만큼.
아빠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이었다. 아빠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나에게 호스피스 병원을 좀 알아보라고 했다. 아빠의 목소리가 담담했기에 나 역시 알겠다고 하고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아빠에게 정확하게 병의 위중함이나 남은 시간을 언급한 적은 없었는데, 어쩌면 아빠는 이때쯤 스스로의 상태를 알고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호스피스 병원은 병을 치유하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다. 호스피스 병동의 의료진들은 죽음을 멈출 수 없지만 능숙히 다룰 수 있고, 말기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남은 생을 조금 더 인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아빠와 우리 가족은 대기를 신청하고 한 달 조금 덜 돼서 입원 허락을 얻었다. 그 무렵 아빠의 통증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입원할 날을 얼마나 마음 졸이며 기다렸는지 모른다.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가 났다며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 나는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빠의 극심한 통증을 이제는 덜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집에 얼른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제 아빠 입원할 수 있데!" 나는 고조된 목소리로 소식을 알렸다. 내 전화를 받은 부모님은 병원에서 지낼 단출한 옷가지며 세면도구를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설 채비를 마쳤다.
대문을 나서는 그 순간, 일생을 함께 해온 부부는 깨달았을 것이다. 지금 대문을 나서면 다시는 함께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