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지은 찰밥을 엎어 버렸다

가족을 떠나보낸 뒤에 찾아오는 감정의 파도

by 리마인더


우리 아빠는 떡을 참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집안 내력 같기도 한데, 명절에 할머니 댁에 가면 아빠나 그의 형제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물도 마시지 않은 채 대접에 담겨있는 떡을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종종 지켜볼 수 있었다. 밥 먹을 때 물 없이는 잘 넘어가지 않는 엄마에게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을 거다. 시장에 갈 일이 있으면 아빠는 떡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밤이며 땅콩, 검은콩이 먹음직스럽게 고명으로 올려진 찰떡을 사서 들어오곤 했다. 우연인지 아닌지 동네에서 방앗간 사장님과 친구가 된 아빠는 종종 따끈한 쑥떡이나 인절미를 받아 오기도 했는데, 집에 가져온 떡은 딱딱하게 굳을 걱정 없이 주로 아빠와 내가 먹어치웠다. 다른 식구들은 떡을 크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게 맞겠다.



감당하기에 큰 일을 겪게 된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잘 빠져나오지 못한다. 장례식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한동안 혼이 빠진 듯 멍하니 보내는 날이 많았다. 때가 되면 밥을 먹었고 회사도 나가며 주워진 하루를 살아냈지만 도무지 과 마음은 기운이 나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집에서 요리도 하지 않은 채 배달 음식에 의존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시기에 집에서 음식을 직접 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보내는 중에 정월대보름날이 다가왔다. 엄마는 오랜만에 부엌에 들어가 해마다 해왔던 것처럼 찰밥과 동태찌개를 정성껏 끓였다. 아빠가 늘 맛있게 한 공기 뚝딱 먹어치우곤 했던 찰밥. 엄마는 아빠 생각도 나고 우리들도 먹을까 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아빠의 장례식 이후부터 언니와 큰 조카, 곧 세상 밖으로 나올 둘째 조카가 함께 대구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언니가 나를 보더니 대뜸 네가 찰밥을 좋아하니 좀 먹으라고 했다. 아빠와 내가 잘 먹어서 엄마가 수고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이미 밖에서 요기를 하고 들어온 데다 나 역시 당장은 조금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 먹겠다고 했는데 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결국 몇 마디 더 하다가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 "지금 먹고 싶지 않다는데 왜 먹으라고 하느냐", "아무도 먹을 사람이 없는데, 엄마는 뭣하러 찰밥을 했느냐", "나도 먹기 싫으니까 먹을 사람이 없으면 버려라." 궁지에 몰리자 열이 받아서 찰밥이 가득 든 밥솥을 들고 와 싱크대 안으로 털어 버렸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엄마도 감정이 폭발한 듯 아무도 먹지 말라며 끓여놓은 동태찌개 한솥을 싱크대에 모두 부어버렸다. 순식간에 귀한 음식이 뒤범벅되어 음식물쓰레기가 되었다. 후회스러웠고,간 내가 크게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걸 깨달은 나는 엄마 앞에 다가가 무릎 꿇고 앉았다. 어린아이처럼 잘못했다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눈물이 났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우리 가족 모두는 건들면 확 터져버릴 것처럼 화가 나 있었다고 밖에는 설명하지 못하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너무도 낯설고 생경한 경험이었다. 왜 하필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싶어 원망스러웠고, 되돌릴 수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돌리고 싶었다. 삶이 이토록 허무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은 모든 것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렸다. 마음에는 화가 가득했고 누구도 이런 상실감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고립감마저 들었다. 평소 가까웠던 사람조차 만나고 싶지 않을 만큼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마치 가면을 쓴 듯 내 진심을 숨긴 채 사람들을 대했고 그럴수록 마음속은 더 곪아 갔다. 현실을 인정하고 제대로 받아들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상실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방법을 몰랐기에 가족들과도 서로 속마음은 꺼내지 못한 채 겉도는 대화만 오갔다. 가족이 떠난 뒤에 남겨진 사람들. 솔직한 감정 그대로 나누는 것이 큰 위로와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을 당시에는 까맣게 몰랐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으로 지금 너무 힘들다고 감정을 드러내 터 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필요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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